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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나무 높이

 

△ 나무를 몇 그루나 디디고 있는거냐.

 

 

 

한번도 아파트에 살아본 적 없다. 늘 땅과 가까이 붙어 지냈고, 운 좋게도 유년의 꽤 많은 몫을 작은 마당에서 커가는 개를 돌보며 지냈다. 라면도 종종 끓여주고. 아파트에서 태어났다는 사람을 만나면 신기했다. 어릴때는 이름때문에 '너네 집은 반지하'라는 놀림을 받았는데 - 얼마나 놀리기 좋은 이름인가. 초등학교 4학년 무렵에 반지름을 배우기 시작할 때는 가벼운 신고식과 함께 반지름이 되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반지르미~' 하시는데, '네!' 하면서 벌떡 일어났거든 - , 꽤 진지하게 스트레스를 받아서 잠깐 아파트에 살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사는 집은 2층의 아담한 단독 주택이다. (아. 내가 물론 혼자사는 서울은 작은 방이 전부지만.) 중학교 때 이사를 온 집인데, 어머니의 뜻에 따라 바로 옆집으로 이사를 했다. 왜? 어린 마음에는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는데, 견물생심이라는 말 있잖은가. 우리집 주방에 딸린 작은 창으로 옆집의 화단이 보였는데, 어머니 눈에는 그게 그렇게 좋아보였나보다. 한창 덩치가 커가던 초등학교 동창 몇이 이사를 도우러 왔지만, 사실 이사를 도운건지 놀러온건지 모를 정도로 빨리 끝났다. 그래도 이사라고 신문지를 깔아놓고 떠들썩하게 뭔가를 시켜먹은 기억이 어렴풋하다. 

 

아파트는 답답해. 어머니가 나에게 불어넣은 신념 중의 하나가 '아파트 불가론'이다. 사람이 살 공간이 아니라는 거다. 이 밖에 말도 안되는 어머니의 신념들을 나열해보면 '내 자식은 교사라는 직업을 가져서는 절대 안된다' - 어머니의 아버지와 오빠와 남동생이 교사 혹은 교수다. 그래서 나는 자라나는 꿈나무들에게 물을 줄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했다 - , '아이들은 날 닮아서 비율이 좋다' - 무슨 소린가. 딱 봐도 아버지다. 감사합니다. 빠덜 -, '너는 애는 셋이상 낳아라. 애는 무조건 셋 이상 낳아야 우애가 좋다' - 이건 또 무슨 말씀이신가요. 어머니는 위아래로 남자를 끼고 있는 삼남매다. 연락도 잘 안하던데...- 등이 있다. 아무튼 아파트에 대한 어머니의 신념은 어마어마하게 무거워서,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의 집에 가면 놀라왔다. 이렇게나 좋은데!

 

 

*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인지, 어디서 읽은 이야기인지는 모르겠는데 사람은 나무보다 높은 곳에 살면 안 된단다. 구체적인 이유는 기억할 수 없지만 이 이론은 어머니의 '아파트 불가론'과 함께 적절하게 반죽되어 어린 나에게 철썩 달라붙었다. 높은 곳에 올라 저만치 아래의 나무를 내려다보고 있는 내 자신이 걱정스러웠고, 나무 곁으로 가고 싶었다. 회색 건물 속에서 일할때면 그 빛도 빛이지만, 높이가 주는 어떤 것들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바쁜 업무 중에 내가 떠있는 허공의 높이를 까맣게 잊고 살다가도 창문을 내다보며 나무 멀리 있다는게 안쓰러웠다. 이렇게 높이 떠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고.

 

고향집에는 거창하게 화단이라고 할 것은 없지만, 계단을 따라 아름다운 꽃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있다. 커다란 라일락 나무도 있고, 무섭게 후두둑 피어나는 붉은 목단도 있고, 근사한 빛깔의 장미도 있다. 어머니가 더운 여름에 막걸리도 줘가며 - 즉사했다- 사랑으로 가꾼 꽃들이다. 지난 번 다녔던 작은 출판사도 조그마한 마당에 나무와 꽃이 즐비했다. 문득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색을 달리하는 잎들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아침마다 새소리가 들렸고, 주인없는 까만 고양이가 게으르게 앉아있는 아침이 있었다. 라일락이 지고 나면, 불두화가 소담스레 피어났다가 지고, 그 자리에 이 맘때쯤 장미가 피어난다는 어김없는 사실들이 나를 언제나 기쁘게 했다.

 

아파트에서도 얼마든지 베란다를 이용해 초록을 가꾸는 살림꾼들이 많지만, 나도 아파트에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해본 적 없다. 작은 마당을 디디고 나무를 쓰다듬으며 꽃이 피고 지는 시간을 지켜보며 살고 싶다. 아. 요즘은 주택이 더 비싸다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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