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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좌표

 

△ 미국에서 보내온 항공샷. 내가 사는 별에서 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 많은 발자욱을 뒤로 떼어놓으면 우주도 이런 모습이 아닐까.

 

 

 

 

우주의 좌표.

 

 

우주의 좌표에 대해서 쓰고 싶었다. 정확히는 우주에서 머무르는 나의 좌표座標. 말 그대로 내가 앉아있는 우주 어딘가의 자리.

나는 이 무한한 그림의 어디쯤에서 명하고 또 멸하고 있을까. 내 안의 빛을 피웠다가 꺼뜨렸다가 깜빡깜빡. 나 여기 있어요.

 

그 빛은 어떤 색일지, 얼마큼의 멀리에서도 보일런지, 살아가는내내 쉼없이 반짝이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지도.   

함께 열심히 깜빡이는 각자의 앉은 자리들은 안녕한지. 어떤 연유와 우연에서 각자의 앉은 자리들이 스치고 때로는 꼭 겹치기도 하는지.

두렵도록 드넓게 펼쳐진 이 우주.

세상의 모든 시간과 모든 공간이 다 들어있는 이 거대한 존재 속에서.

 

 

좌표와 좌표사이. 나와 당신 사이의 틈에는 또 얼마큼의 시간과 공간과 우연과 인연이 들어있는걸까.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상관을 가늠해보진 않지만, 이따금 밤하늘의 좌표를 들여다본다.

 


나는 이제 겨울의 오리온 자리를 어떻게 잊을까!

35도를 웃도는 날씨, 둔탁하게 돌아가는 낡은 선풍기,
아침에 널면 바삭하게 마르는 빨래들.


갑자기 찾아온 여름인듯 하지만, 머리 위를 올려다보면 어깨까지 떨어질듯 커다랗게 빛나던 겨울밤의 별들.
"그러니까 지금이 겨울인거지?" 몇번이나 계절을 의심하는 나를 조용히 수긍케하던 겨울의 별자리들.

빠이에서 누워 올려다본 하늘, 몇몇이서 불빛도 없는 어둠을 하염없이 가르던 도로 위, 맞바람에 덜덜떨며 오르던 산비탈,

다시 방콕으로 향하는 밤버스 안에서도 반짝반짝 나를 향해 빛을 내던 오리온 자리.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메신저에 남겨진 친구들의 외국어가 비로소 '다녀왔구나' 라는 것을 실감케 한다.

내일이 설날이렷다.-2015년 2월 18일의 얼굴책

 

 

올해 2월. 생일을 겸해 태국의 작은 도시 빠이에 머물렀다. 어떤 인연과 우연을 덧대어 각자의 좌표가 꼭 한데서 겹쳐졌을까. 일본과 대만과 홍콩과 한국의 소년소녀가 작은 스쿠터를 끌고 천여개의 커브를 돌고 돌아 태국의 맨 끝으로 여행을 떠났다. 가는 길엔 사계절을 한꺼번에 만났다. 이름모를 연보라꽃이 활짝 피어있다가 가을 낙엽이 뒹굴고, 낙엽이 뒹굴다가도 어린 봄의 초록이 눈앞에 펼쳐진다. 작은 버스에 몸을 실은 작은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고, 문득 코끼리를 마주쳐 서로의 눈부처를 들여다본다. 다급하게 내리는 산 속의 어둠. 도로 위엔 산이슬에 얼음이 엉기고 컴컴한 어둠속을 서로의 붉은 꼬리등만 바라보며 나아간다. 세 대의 스쿠터 - 나는 스쿠터 운전을 못한다. 대만 소녀 뒤에 달라붙어 있었다 - . 컴컴한 어둠 속을 가르는건 오직 빨간 불빛 세 개. 반짝이는 서로의 좌표. 나 여기 있어. 너는 어디있니. 서로가 서로를 기댄다. 어쩌면 우리가 반짝이는 이유.

 

문득 머리를 들어 바라본 하늘에는 분명하게 반짝이는 오리온 자리. 굽이치는 산길 위에서 내 머리위의 별들도 함께 굽이친다. 오리온의 허리춤에 나란한 별 세개가 마치 우리와 꼭 같아서 혼자 웃었다. 아름다운 내 삶의 한 조각. 컴컴한 어둠 속을 무사히 뚫고 나와 서로를 바라보며 뜨거운 국수를 마주하던 순간을 어떻게 잊을까. 얼어버린 친구의 볼 위에 내 손을 살며시 대어보던 밤.

 

 

"나 근데 갑자기 여행의 진짜 의미를 알았어. 너같은 애도 만나고, 또 다른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나고...난 좀 운이 따르나봐.

나랑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함께 소중한 순간을 나누고 자기의 경험들을 공유하는 것.

이게 진짜 여행이라는걸 갑자기 깨달았어. 지금하고 있는 이 여행이 내 인생에서 제일 반짝이고 아름다운 순간이야. "

(※중국어였으나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지나친 아름다움이 첨가되었음!)

원래도 말 잘하는 친구라는 건 알았지만, 음성 메세지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들으면서 눈물이 뚝뚝 흐른다. 너무 아름다워서!

길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여행했던 4일동안, 늘 조금은 불만있는듯 하고 피곤해하는듯 보였었는데 짜식! 마음으로 다 느끼고 있었구나.

고마워. 웨일러.-2015년 2월 21일의 얼굴책

 

 

글을 쓰면서, 미국에서 보내온 작은 우주를 들여다보면서, 빠이에서 만났던 얼굴들과 그 길을 생각하면서, 찬란하던 머리 위의 오리온 자리를 그려보면서, 한국으로 돌아온 며칠 뒤에 받아본 음성메세지와 너무 아름답다고 설명할 수 밖에 없는 그 기분을 눈물을 뚝뚝 흘리며 무섭게 끌어안던 순간이 되살아나면서 우주의 좌표에 대해 아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우리는 평생을 반짝인다. 끊임없이 나 여기 있다고 말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나의 불빛을 보고 내게 기대고, 나 역시 누군가의 불빛을 보고 나를 기댄다. 혼자가 아니구나. 이 무섭도록 넓고 깜깜한 그림 속에서 누군가와 함께 하는구나. 서로가 서로를 기대기 위해서, 서로가 서로를 나누기 위해서. 그래서 우리는 한결같이 반짝이는거구나. 반짝이라고 태어났구나.

 

함께 반짝일 수 있다는 것, 서로의 반짝임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 누군가의 좌표를 기억할 수 있다는 것. 꽤 행운이야. 정말로. 

 

 

 

 

 

(*) 좌표와 좌표가 만나는 일. 모든 시간과 공간과 우연과 인연의 귀퉁이가 맞닿는 아름답고도 놀라운 일. 그래서 우주가 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