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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2015년 5월 31일 : 사랑에 빠질 것 같다

 

△ 나는야 짝사랑 카사노바. 이번 시즌 짝사랑은 롹스타 너로 정했다.

 

 

 

사랑에 빠질 것 같다.

 

 

라고 적어놓고 이 문장을 물끄러미 들여다 보았다. 달뜬 온기가 무릎과 팔꿈치를 적당히 데우는 이 밤.

 

 

 

* 오늘 작은 공연을 보러 갔다. 내가 얼마전에 적은 글 중에 '봄눈별' 에 관한 글이 있는데, 오늘 마침 그 분이 노래 몇 곡을 부른다는 게 아닌가. 작년부터 열리기를 기대하던 공연이었기에, 우주가 하는 일은 정말로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가고 싶은 공연에 꼭 보고 싶은 사람이 합을 맞춘 것처럼 짜잔하고. '봄눈별' 이란 분은 꼭 한 번 눈으로 그의 삶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의 말대로 삶을 꾸려가면 얼마나 담백하고 간결한 인간이 될 수 있는지 궁금해서. 나도 좀 담백하고 간결하고 싶은 마음에.

 

* '봄눈별' 의 노래는 맨 끝에 있었고, 원래부터 주저앉아 노래 청해듣기를 좋아하는 나는 점심을 걸게먹고 운 좋게 맨 앞자리에 앉아 몇 분들의 노래를 순서대로 들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하늘은 초록색이고, 바람이 불고, 바람 위에 얹은 선율이 나를 기분좋게 하는 순간. 노래들을 듣다가 '삶의 조각조각을 이은 느낌' 이라는 짤막한 감상을 적어두었다.

 

그리고 갑자기 무지무지무지무지무지무지 좋은 노래를 만났다. 우와. 노래가 다 끝나자마자 나는 그 사람에게 무조건 뛰어가서 없는 씨디라도 내놓으라고 할 판이었는데, 마침 씨디를 딱 여덟장 가져왔다고 하는게 아닌가. 다급한 마음에 제일 먼저 뛰어가서 '씨디사고 싶은데요!' 라고 손을 번쩍. 계좌이체가 된다는 말에 한 장 더 집었다. 크으. 씨디에 싸인받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 분이 다른 분들과 나누는 이야기 몇 개를 주워 담았는데, 태국 치앙마이로 한 달간 여행을 다녀왔다는 것이다. 우와. 나도 치앙마이 갔다왔는데! 막 이것저것 다 갖다붙이고 싶어하는 나를 쳐다보던 친구가 "야! 신혼여행으로 태국 갔다왔대!" 아 진짜. 왜 모든 내 스타일의 남자들은 결혼을 했거나 결혼을 할 예정인걸까. 내가 어떻게 해보겠다는 흑심 뻐꾸기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연애박사 박박사님의 강의에 의하면 '항상 (사랑에 빠지겠다는) 의도를 품어라.' 가 포인트였단 말이다. 왜 난 의도조차 품지 못하는걸까. 엉엉.

 

아무튼 신혼은 신혼이고, 음악은 음악이지 않은가. 집에 오는 버스 안에서, 발음이 조금 힘든 그 사람의 이름을 몇 번 나직이 불러보았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 가사를 쓰고, 또 그렇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정말 근사하다고 내내 끄덕였다. 아내는 어떤 분일지도 몹시 궁금했다. 그런 사람이 마음으로 택한 사람은 어떤 느낌일까. 집에 와서 컴퓨터를 켜고 오늘 산 씨디를 돌리면서, 그 사람의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블로그 발견. 앨범에 들어있지 않은 노래들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있었고, 다른 글들을 살펴보다가... 어.

 

이 달 초에 이사를 준비하면서 좋아하는 동네 몇 군데를 인터넷으로 살펴보다가, 글을 완전 내 스타일로 괜찮게 쓰는 분이 있어서 이웃을 맺어놓았더랬다. 옆동네에 사는 이 분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나의 [완전 소중] 폴더에 귀하게 모신 분이다. 발음이 조금 힘든 그 사람의 블로그에 이미 내 덧글이 달려있었다. 어. 원래 내가 좋아하던 사람이네. 와. 이건 진짜 인연이다.

 

(요 며칠 친구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기에) 옆에 있던 친구에게 "나 사랑에 빠졌어!" 라고 큰 소리로 외치면서, 오늘 내가 뿅간 그 가수가 원래 내가 좋아하던 사람이었다고 난리법석을 쳤다. 난 금단의 강을 건넜노라고. 정신적으로 유부남을 사랑하게 되었노라며! 친구가 실컷 사랑하라며 낄낄 나를 비웃어줬다.

 

그 분의 블로그에 '저 오늘 싸인받은 - '감'으로 알아들었고 싸인하려 했기에 - 아무개 입니다. 원래 알던 분인줄 몰랐어요!' 라고 반가운 덧글을 남겼다. 답글이 달렸고 몇 개의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신혼여행 태국으로 갔다오셨다는 얘기 들었다. 저도 빠이에 갔다왔다!'라며 아교처럼 찐득댔는데, 어머나 세상에. 결혼 안 했다고. 최근에 밴드 멤버 하나가 신혼여행을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섞어 들은 것 같다는 대답. 어머나 세상에.

 

내가 들었던 참 좋던 그 노래도 빠이에서 만든 거라고. 어머나 세상에. 저 이제 사랑해도 되는거죠. 번호도 땄는데 뭐. (현금이 없어서 계좌이체하겠다며 계좌번호를 땄... 매일매일 돈을 1004원씩 넣으면서 더럽게 들러붙는거야! 요즘은 더럽the love이 유행이라며.)

 

그러고보니 내가 평생 살면서 순수한 의도(?)로 남자한테 번호를 딱 두번 땄는데, 그게 오늘 계좌이체 때문에 계좌 번호 딴 거 하나. 그리고 2년전에 홍대거리에서 기타치는 친구 번호. 정말 친해지고 싶었다! '저 원래 이런 사람 아닌데, 친하게 지내면 안되요?' 라며 핸드폰을 쭈볏쭈볏. 그 친구가 의외로 음악을 많이 몰라서, 내가 좋아하는 가수 추천도 많이 해주고 친하게 잘 지냈었는데 어떤 계기로 연락이 뚝 끊겨서 아쉽긴 하다. 어쩔 수 없지만.

 

아무튼 나는 오늘부터 사랑에 빠져야지.

 

혼자 노트북을 켜고 꽤 오랫동안 투닥투닥거리고 있으니 친구가 '또 일기쓰니' 라며 물어본다. '응' '너 진짜 사랑에 빠졌구나.' '응!'

 

 

* 봄눈별 님 미안합니다. 제가 미리 사랑에 빠져가지구 사실 집중을 잘 못했어요. 원래 뭐 인생이 그런거니까.

 

 

 

 

나와 같은 시기에 같은 곳을 여행한 사람.

어떤 곳에 대해 함께 첫인상을 나눌 수 있는 사람.

글로 생각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

음악으로 삶을 풀어낼 수 있는 사람.

온순을 품고 있는 사람.

 

 

사랑에 빠질 것 같다. 아니 빠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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