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의 날씨

2015년 5월 24일 : 아주 새로운 사업

 

△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면서요. 진짜냐고 여러번 되묻고 싶은 오늘

 

 

 

동화를 무척 좋아했다. 우리나라 동화뿐만 아니라 트롤이 나오는 먼 나라의 동화도 참 좋아했다. 유년시절 읽었던 동화들 중 오늘따라 생각이 나는 동화는 말을 할 때마다 입에서 보석이 튀어나오는 소녀의 이야기이다. 그 소녀는 마음이 참 예쁘고 고와서 말을 할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온갖 보석이 튀어나왔다. 그 소녀를 시샘한 언니들의 입에서는 말을 할 때마다 세상의 온갖 징그러운 것들이 튀어나왔다. 쥐, 바퀴벌레, 뱀...

 

오늘 입에서 보석이 튀어나오는 분을 만나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 입에서 다이아며 루비 따위의 온갖 아름다운 보석들이 쏟아졌고, 그 보석들에 비할 수 없을만큼 아름다운 광채를 자랑하는 미래의 꿈과 희망도 줄줄이 쏟아졌다. 슬펐다. 그 입에서 튀어나오는 것은 분명 아름다운 보석들인데, 내 손이 가닿기도 전에 쥐와 바퀴벌레와 뱀으로 변해버리니 몹시 슬펐다. 내가 동화속의 그 언니들처럼 마음이 나빠서 그대의 아름다운 꿈과 희망을 보지 못하나 잠시 생각도 하였다.

 

 

'나는 사람들이 다단계에 왜 빠지는지 몰랐는데, 멀쩡한 사람이 내 앞에서 다이아와 루비 따위의 보석이름을 줄줄 얘기하며 꿈과 희망에 부풀어 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분노와 당혹감보다는 슬픔이 더 크게 몰려왔지만 마음속으로 1. 이런 일은 내가 어른이니까 겪는다 2. 내가 버는 돈에 떳떳하자. 이 두 가지만 계속 만트라처럼 중얼거리고 있었다. 슬프다!' - 오늘의 얼굴책

 

 

슬펐다. 자주 뵙지는 못하지만 내가 마음으로 존경하고 좋아하는 분이었다. 그 분이 너무나 열심히 입에서 보석을 뱉어내고 계셨다. 어서 주워담으라고. 이것은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니 어서 쓸어담으라고. 내 눈에는 쥐와 바퀴벌레와 뱀이라서 쓸어담을 수가 없었다. 그 분이 지난 몇 년간 하시는 일의 고됨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멋있는 분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분이 내 앞에서 '아주 새로운 사업'이라며 열을 띠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좋아하는 팝송이 때마침 흘러나와서 온갖 신경을 음악에다 집중했다. 가사를 기억하려고 애썼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십년도 전에 본 일본영화도 떠올랐다. 내가 잠시만 사토라레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오는 길에 담장마다 핀 장미가 화사했다. 눈이 부셨다. 왜 내가 마음으로 존경하고 좋아하는 분들은 끝끝내 나와 어그러질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작년 봄에는 나이 지긋한 남성이 대뜸 나를 사랑한다며 내 품에 도시락 폭탄을 안긴 적이 있다.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은 손에 쥐게 해주겠노라고 속삭였다. 그런 나를 두고 선배는 '그냥 잊어버려. 세상은 원래 그래. 도대체 너는 인간한테 뭘 기대하는거야? 인간은 그냥 인간이야.' 라고 했다. 인간은 그냥 인간이라고. 너도 그냥 인간일 뿐이니 인간에 대해서 지나친 기대도, 결벽도 갖지 말라고.

 

오는 길에 밀크티를 한 잔 마시려고 했는데, 받아들고보니 말도 안되는 희멀건한 분홍색의 타로티를 주문했더라. 내가 싫어하는건데. 오월의 열기와 장미를 그대로 품에 안고 집에 와서 잠이 들었다. 왜 그렇게 추웠나 모르겠다. 일어나서 누군가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그럴땐 자는게 맞다. 몸의 보호본능이다' 라고 해주었다. 그런 마음을 안고 잤더니 꿈도 아주 이상했다. 깨고 나니 누군지도 모를 나의 애인과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는 꿈이었다.

 

 

* 브금으로 페퍼톤스 <겨울의 사업가>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