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살로 하루 결근한 사이에 누가 검색엔진을 줌으로 바꿔놨다. 모든 문제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고 굳게 믿는다.)
어제 정오께부터 회사에 인터넷이 되지 않았다. 팩스며 전화기, 프린터가 돌아가며 말썽을 일으키는 자그마한 회사기에 인터넷 문제쯤이야 몇 번 껐다 켜면 고쳐지려니 했건만 어제는 문제가 좀 커졌다. AS 기사는 하루가 지나야 올 수 있었고, 대표들은 난리가 났으며, 무엇보다 문제는 내가 한 순간에 (컴퓨터 앞에서) 꽤나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버렸다는 거다. 컴퓨터가 없으니 회사에서 할 일이 없었다. 난감했다. 2년째 묵혀둔 서류뭉치를 뒤적이며 미뤄둔 정리를 시작하다가, 메모를 좀 끄적이다가, 한숨을 쉬다가, (컴퓨터 앞에서) 나의 쓸모없음을 자각하다가 탄식했다. 아아, 컴퓨터가 없어도 내 머릿 속에 새 책에 대한 각종 아이디어가 둥둥 떠다닌다면 좋으련만. 내 생각까지 컴퓨터가 대신 해주고 있었구나.
이 상황을 위로하자 싶어 회사 서가에 꽂힌 <고독의 즐거움>이란 책을 꺼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늘 이 아저씨처럼 살고 싶었건만, 사실 정말로 이 아저씨처럼 살고 싶은건가? 벌써 내 나이에 혼자 자급자족하며 처박혀 사는 즐거움에 대해서 터득하다니. 군중 속에서 고독할바엔 홀로 pure 고독이 좋아를 부르짖으며 사는 삶. 컴퓨터 앞에 고독한 나는 회생 불가의 모뎀을 이리저리 만지면서 책을 몇 장 뒤적이다가 도로 꽂아두었다.
오전에 인터넷을 고쳤다. 손가락 마디마디들이 쾌재를 부른다. 익숙한 관절의 놀림과 귓가를 때리는 경쾌한 키보드의 박자들이 반갑다. 이게 반갑다.
* 인터넷을 고칠 무렵, 시간을 벌기 위해 장을 일찍 보러 다녀왔다. 자전거에 짐을 싣고 회사로 돌아가는데, 맨홀에서 고개 하나가 쑥 나오길래 깜짝 놀랐다. 그리고 바로 생각한다. '저 아저씨는 중졸? 고졸?' 내가 이런 인간이지 싶어 씁쓸하다.
태어나며 저마다 살 자리를 정해놓은 것도 아닐텐데, 많이 배울수록 높은 곳에 사는 게 우리네 세상이다. 으레 그렇게 살고 있고, 으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못 배울수록 못 살수록 땅에 붙어 살아간다. 세상이 으레 정해놓은 자리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 세상은 스포트라이트를 쏟아 붓는다. 하늘에 살아야 할 사람이 땅에 붙어 살거나, 땅에 붙어 살아야 할 사람이 하늘 높은 곳에 떵떵 거리면 세상이 깜짝 놀란다. '아니, 어찌 그렇게 살아요?' 서울대를 나온 농부, 외국계 증권사를 다니다 박차고 나온 인력거꾼, 중졸인데 대통령, 고졸인데 대기업 간부.
날씨가 맑고 좋다. 세상의 틀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기를. 생각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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