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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를 시켜주지 않으려는 교묘한 소개팅 주선에 시달리고 있다

 

△ 선배가 "얘 괜찮지?" 라면서 보내준 사진 한 장. 울어야 하나? 웃어야 하나?

 

 

요즘 두 유부남들의 '소개팅 주선'에 시달리고 있다. 일전에 신입 편집자분이 '주변에 괜찮은 사람 있는데 여자친구가 참 예쁘다'로 결론을 지은 허지웅 사건에 이어 비슷한 맥락의 소개팅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나는 잘 지내고 있는데 왜 나를 가만두지 못해서 안달인가. 이 유부남들은 무슨 꿍꿍이인가.

 

 

사건 1.

 

이틀전인 월요일 저녁. 1차에서 거나하게 취한 우리는 허지웅 사건의 장본인인 신입 직원분이 '전에는 미안했으니 정말 괜찮은 사람 소개시켜 주겠다' 며 잘 아는 후배가 한다는 술집으로 향했다. 나는 거기서 왔다갔다하면서 토한 기억 밖에 없고, 토를 하면서도 미안하고 송구한 마음에 변기를 박박 닦아댔던 기억이 난다. 제정신을 차리고 보니 굳이 술취한 나를 소개시켜준 이유가 뭔가. 게다가 나는 거기서 너무 많은 쓸데없는 소리를 해댔고 (예를 들어) "쎅~쒸 마일드 한 잔 말아 주쎄요~오!" 다시는 못 갈것 같다. 소개 감사합니다. 

 

↘ 부록 : 허지웅 사건을 무마해보려는 신입 편집자분의 '사건 1'전에 잠시 사은품처럼 딸려있었던 부록 하나. 나랑 되게 취향과 성격이 잘 맞을 것 같은 후배를 하나 소개시켜준다며, 최근 마흔넘은 여자 돌싱과 연애하다 깨져서 충격에서 못 헤어나오고 있지만 진짜 괜찮은 놈이라며 가볍게 술자리에 한 번 부르자고 한다. "진짜 괜찮은 놈이예요~ 여동생한테 소개시켜주긴 그렇지만!" 오빠 없는게 서럽다. 오빠라면 한 대 때려줬을텐데. 너를!

 

 

 

사건 2.  

 

하루 전엔 화요일 오후. 갑자기 선배가 '소개팅을 시켜주겠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 무슨 꿍꿍이인가. 일단 멀쩡하게 나온 상대남의 사진 한장을 나에게 투척하며, 내 전화번호를 그 사내에게 넘긴 상태. 사이버 러브 전문가인 나는 실제 남자를 만나야 한다는 부담감에 (소개팅 경험 딱 한번 있음.) 짐짓 어깨가 굳었지만 '요한'이라는 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사내의 이름이 썩 나쁘진 않았다.

 

그리고 오고간 대화의 내용. (정확히 옮긴다)

 

* 남자 : 반갑습니다. ○○선배가 말한 요한입니다.

* 나 : 네 안녕하세요

* 남자 : 시간 괜찮으시면 저녁 식사나 간단하게 했으면 해요

* 나 : 아 넵~
* 남자 : 분당 사신다구요^^(남자가 분당 주민임)

* 나 : 네? 아닌데요. 저 홍대 사는데.

* 남자 : 아... 급거리감 느껴지네요.

* 나 : 아 그러세요

* 남자 : 거리가 뭐 대수인가요. 마음의 거리가 중요하죠. (되게 대수롭게 느껴짐)

* 나 : 거리가 좀 부담되시나봐요

* 남자 :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의 거리가 중요하죠.

* 나 : 계속 거리 얘기를 하셔서요^^

* 남자 : 사실 좀 머네요;;

 

끝.

 

왜 이놈의 선배는 분당 사는 남자를 갖다댄 걸로도 부족해서, 나를 분당녀라고 소개까지 했을까. 그렇게까지 맺어주고 싶었나!

 

 

사건 3.

 

그렇게 소개팅이 틀어지고(?)나서 선배에게 밤에 연락이 왔다. "야 정말 미안하다. 이번에는 진짜 제대로 된 사람으로 소개시켜줄게!"

나를 그렇게 방치해놓은건 언제고, 왜 이렇게 갑자기 소개팅을 못 시켜서 안달이냐고 닦달했더니 의뭉스러운 웃음만을 흘릴 뿐. 아무튼 선배가 얘는 어떠냐, 진짜 괜찮다며 보내준 사진이

 

하나는 진짜 죽일듯한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는 사진. 내가 화를 내며 "이게 뭐냐, 아주 사진 두 번 봤다간 튀어나와서 날 팰 기세다" 라고 했더니 괜찮은 사진 보내준다며 다시 찾아 보내준 사진이 저기 위의 '레이어드 룩'이다.

옷을 입은 사람의 사진이 아니라 사람 위에 걸쳐진 옷의 사진을 보냈다.

 

 

 

다들 내가 앞으로 장기간 연애를 안하고 있을 시에 대비해서 "나는 책임을 다했다, 너를 방관하지 않았다"라는 일말의 탈출구를 미리 만들어 두는 걸까. 소개를 시켜주지 않으려는 교묘한 소개팅 주선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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