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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2014년 4월 6일 : 왠지 거창돋는 '모교 방문'의 날

 

식목일 다음 날. (꽃과 나무를 워낙 좋아해서 해마다 돌아오는 식목일이면 많은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매년 떠올리는 장면 장면도 있고.)

 

새 집에서 하얀 블라우스를 차려입은 민영이가 1초만에 만들어준 샐러드 파스타를 먹고, 밖으로 나가서 커피와 케이크를 또 먹고,

또 다른 까페로 이동해서 롤케이크 두 개를 또 먹었다.

 

△ 민영이가 "언니! 빨리!" 라며 다급하게 나를 불러 쫓아올라간 새 집에서 먹은 파스타.

사진 찾기가 귀찮았지만, 민영이는 내 블로그의 그림자 손님이기에 안 올리면 섭섭해 할 수도 있다. 다음에는 또 어떤 파스타를 먹여줄꺼니?

 

 

일행들을 먼저 보내고 나는 혼자 학교를 좀 걷고 싶었다. 왠일로. 이 곳 생활을 못 견디겠거나, 못 견디게 그리워서 한 달에 한 번 꼴로 내려오는 대구지만 학교를 못 견디게 그리워했던 적은 없는데. 중국 유학할 때 일청담이 그렇게 보고 싶었던 것 빼고.

 

아무튼 봄도 오고, 봄에는 늘 학교에서 연애를 시작했던 것 같고(낄낄), 그래서 뭔가 좀 두근두근 새내기처럼 설레는 마음을 안고 엄마가 사준 때때옷 입고 학교를 걸어보기로 했다. 우리 학교에서 제일 후진 인문대는 여전히 후져보이지만, 그래도 인문대 라인에도 봄이 왔구나.

 

인문대에서 대학원동 넘어가는 길(테니스 코트)을 따라서 걷다가 백양로를 끼고, 대운동장까지 가서 애들 축구하는 것도 좀 보다가 한바퀴 주욱 돌아 일청담까지 왔다. 일청담에서 다시 박물관 쪽으로 가서 경상대 앞 까지 간다음 기숙사 쪽으로 이동해서 어학원과 도서관과 조소동을 지나 쪽문으로 빠져나와 허소라를 마주치는 코스. 소라를 마주치는 건 예정에 없긴 했지만.

 

 

 

 

 

 

 

 

 

 

 

 

 

 

일청담에서 분수가 서른, 마흔 번도 넘게 오르락 내리락 하는 걸 가만히 붙어서서 보고 있었다. 딱히 일청담에서 기억에 남는 연애질을 한 것도 아니고, 특별히 일청담과 그 주변의 풍광이 아름다운 것도 아니며 생일에 물에 빠졌다던가 하는 찐한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왠지 문득 문득 일청담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아주 미쳐버릴 정도로.

 

사연있는 여자처럼 좀 멀찍이 떨어져서 아련하게 일청담 분수쇼를 바라보다가, 주위 풍경이 차차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여자의 가녀린 어깨를 감싸안은 남자. 어깨에 어깨를 포개고 있는 남자와 여자. 못생긴 남자와 예쁜 여자. 남자의 어깨에 목을 기대고 있는 여자. 아차 싶어서 일청담에 거의 빠질 듯이 가까이 다가가서 분수쇼를 보기 시작했다. 낙엽과 쓰레기가 둥둥 떠있는 썩은 물이 그득하다. (멀리서 바라보는게 훨씬 더 나았겠지만) 어쨌든 이 곳은 커플만이 앉아 쉴 수 있는 곳이 아님을 내 온몸으로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아무도 내가 증명 중이라는 걸 몰랐고, 나에게 관심도 없었긴 하다.

 

조금은 쌀쌀한 바람에 높이 치솟은 물줄기가 바람 결에 깃발처럼 살며시 펄럭였다가 사라지곤 했는데, 물 무지개가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아름다웠다. 한참을 꼼짝없이 바라보다가 박물관으로 걸음을 옮기면서도 뒤돌아서 한참을 또 바라보았다.

 

한 여름에 졸업하던 날, 이 곳에 올라서 새파랗게 잔디돋은 풍경을 담았었는데. 그 때 기억이 새록.

 

 

텅빈 학교 이곳저곳을 휘저으며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니, 학교 다니던 내 모습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복현회관에서 밥 먹던 나, 도서관에서 초콜렛 열 개 쌓아놓고 공부는 안하고 계속 초콜렛만 먹던 나, 남자친구 축구하는 것 구경하던 나, 그애가 준비하던 회계사 시험, 경상대 함현재. 오토바이 뒤에 올라타고 너무 무서워서 소리 빽빽 지르던 나, 팀 발표 끝나고 기념으로 조원들과 인증샷 찍었던 구름다리 아래. 1학년 때 친구들과 인문대 앞에서 배드민턴치고 족구하던 기억. 좋아하던 선배랑 거닐었던 비온 뒤 그 길. 숨막히게 습하고 상쾌한 공기와 선배의 어깨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조용히 설레던 마음. (선배한테 대학교 친구들 중에 여자 동기가 잘 없어요, 라고 했더니 대답이 딱이다. "맨날 천날 남자만 만나고 다녔겠지." 어떻게 알았을까.) 

 

'지나고 나면 대학 시절이 참 좋다'는 어른들 말씀은 틀렸다. 나는, 그리고 내 친구들은 이미 대학을 입학하면서부터 (그나마) 대학 시절이 참 좋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는 세대였다. 안 나가려고 발버둥 치고 싶었지만, 다들 그 좋다는 대학 시절을 누구보다 빨리 끝내려고 찢기고 비틀거리고 괴로워했다.

 

그 좋다는 대학 시절의 말미에서 나는 걸어서 10분 남짓 거리의 대학에 택시를 타고 다니기 시작했으며 '아팠다'는 핑계로, 이름도 특이한데다가 출석부도 앞자리인 주제에 자주 수업을 빼먹었다. 나중에는 내가 말도 하기 전에 교수가 '아팠나보죠?'라고 비아냥거렸다. 난 심지어 그 때 딱 한 과목을 듣고 있었는데. 

 

나는 어제 산책에서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큰 나무에게로 가서 그가 피운 벚꽃을 한참 올려보다가 중얼중얼 몇 마디 말을 건네다가 가만히 쓰다듬었다. 어제가 식목일인걸 알았느냐는 말도 하고, 조금 중요한 몇 가지 마음 속 이야기도 꺼냈다. 가만 가만 쓰다듬다가 꽃 피운 하늘을 한참 올려보다가 그랬다. 

 

그러고 보면 '지나고 나면 대학 시절이 참 좋다'는 그 말씀이 꼭 맞다. 지나고 나면 대학 시절 뿐만이 아니라 모든게 다 좋다. 한 걸음 떨어져서 멀리서 보면 떨어진 한 걸음만큼의 여유가 생긴다. 두 걸음 떨어져서 보면 두 걸음 만큼의 여유가 생기겠지. 학교 다닐 때는 늘 너무 힘들었었다.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흐드러진 벚꽃 구경 제대로 못해보고 고등학교에 이어 늘 도서관에 하루 열시간씩 처박혀 있었고 무거운 전공책을 몇 개나 들고 대학원동에서 경상대 5층까지 뛰어다녀야 했으며, 늘 '뒤에서 보면 내 다리가 굵은게 아닌가'라는 강박에 남학우들의 눈을 신경쓰느라 피곤했다. 수업 들으러 갔다가 헤어진 구남친을 만나면 참담했고, 맘에 드는 이상형이 여자친구가 있어도 참담했고, 1퍼센트도 맘에 안드는데 자꾸 들러붙어도 참담했고, 하루에 시험 과목이 네 개라 밤을 새워 공부를 했는데도 시간이 모자라 참담했고, 대학 졸업하고 당최 뭘 해야될지 몰라서 자꾸 참담했고, 회계 과목 수강신청을 잘 못 넣었는데 교수가 안 빼줘서 회계책 한권을 외우느라 참담했다. 참담과 참담 사이에는 온갖 즐거운 기억과 풍경들이 빼곡하지만, 그때는 그 사이에 대해서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즐거운 것들은 금방 지나가고 금방 잊혀지니까.

 

지금 내가 살고있고 지나고 있는 이 시간들도 꼭 그러하겠지. 한참 지나 나의 20대를 문득 되돌아봤을 때, 그때서야 나무를 쓰다듬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름다왔노라고 가만가만 이 시간들을 보듬을 수 있을테다. 인생을 버티는 것은 너무나 슬픈거라고 누군가 말했지만, 어쨌든 지금까지의 나는 잘 버텨왔고 잘 버티고 있으니까.

 

 

 

피식. 그럴지도.

 

 

(*) 나는 '버티나무' 로세.

 

(*) 누군가 나와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곳을, 혹은 비슷한 어딘가를 거니며 마지막엔 좋아하는 나무를 살며시 쓰다듬으며 얘기하고 있지 않을까? 그런 사람이 세상에 단 한명쯤은 있지 않을까? 왠지 곧 연애할 것 같은 기분인데,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