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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계속,

술먹고 섣부르게 잔 폐혜다. 내일 오전에 촬영이 있는데 새벽 세시를 향해 말똥소똥을 다 굴리고 있다. 며칠 전에 산 책이나 폈다. 여전히 간지럽다. 

올 봄에 서점에서 설핏 쥐었다가 지나치게 간지러워 놓아버린 책인데, 간간이 내 머릿 속을 빙글빙글 돌더니 며칠 전 들른 서점의 서가에서 또 다시 목격되어 그냥 사가지고 나왔다. 나도 부드럽기로는 모인 열 중에 으뜸, 혹은 버금을 다투는 인물이지만 이 남자는 몹시도 간지럽다. 간지럽기가 이를데 없다. 결혼 적령기 여성의 시키지도 않은 남편감 골라내기 센서가 자동 작동한다.
/ 이런 남자는 결혼해서 같이 살기 힘들거야.

얼마전 들은 과장님의 한마디도 귓가에 아른 거린다.
/ 남자는 무던한 성격이 최고야. 언니 말 새겨들어.

꼭 열흘 전, 결혼 33주년을 맞은 어머니와 나의 대화도 떠올린다.
/ 아부지 꽃 사왔드나?
/ 꽃은 무신.
/ 안 사왔드나? 내가 그마이 사가라캤는데! 딱 한송이 사가라 캤는데 그걸 안 사왔드나?
/ 너거 아부지가 그렇지. 기대도 안한다.
/ 와, 무슨 그런 남자랑 33년을 사노. 때리치아라.
/ 나는 개안타, 신경 안쓴다.
/ 나는 그런 남자랑 절대 몬산다!

그렇다. 나는 그런 남자랑 절대 같이 못 산다. 무던함과 무심함의 어느 묘한 경계에 알맞은 정도로 걸친 남자랑 살아야 한다. 철마다 달리 피는 꽃을 저마다 어여삐 여기면서도, 소금간과 새우젓간의 차이 같은 건 몰랐으면 좋겠다. 마음의 온도와 경도가 알맞아 쉬이 다치지 않아줬으면 좋겠다.

새벽 세 시가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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