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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자, 이제 시작이야

'자 이제 시작이야, 내  꿈을 ~ 내 꿈을 위한 여행 (피카츄)'

 

 

내가 버스에 탈 때마다 마음 속으로 고요히 읊조리는 노래다. 이제 정말 내 꿈을 위한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물론 매번의 버스여행에서 그런 것은 아니고, 오늘처럼 버스에서 나름의 거사(?)를 치뤄야 할 때. 그러니까 버스에서 내리면 당장 빛의 속도로 뛰어야하는, 지각쟁이의 상황이 이미 정해져있는데 하필 그 자리가 또 formal한 자리라 화장된 얼굴이 필요할 때. 나는 급하게 버스에 올라타 버스 뒷좌석에 엉덩이를 장착한 뒤 파우치를 꺼내보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내가 그럴줄은 몰랐다. 언제부터 자꾸만 지각을 일삼는걸까. 아주아주아주 좋지 않은 버릇인줄 알면서도 늘 헐레벌떡한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실사판을 만든다면, 뛰는 대역 하나만큼은 자신있다. 허구헌날 숨이 차도록 뛰어다닌다. 내 안의 지각쟁이도 덩달이 지각해준다면 지각을 면할 수 있을텐데, 지각 세포는 늘 제시간에 도착해 나를 이러저런한 연유로 지각케 한다. 오늘도 삼분 늦었다. 새벽 다섯시 반에 일어났으면서! 정오에 있는 약속시간을 왜 못지키는걸까. 미스테리다.

 

 

버스를 타도 언제나 '자 이제 시작이야' 를 흥얼거릴 수 있는건 아니다. 버스에서 화장을 하려면 자리 확보가 필수인데, 뒷자리를 사수해야한다. 서서가거나 앞자리만 자리가 비어있다면 화장을 하지 못하게 되므로 낭패. 왜 앞자리에서 화장을 못하나, 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겠는데 버스에 탄 모든 사람에게 나의 화장실력을 공개하고 싶진 않다. 그런걸 쑥스러워하는 성미라.

 

 

오늘 탄 버스는 자리가 많이 비었다. 맨 뒷줄에 탈까하다가 뒷줄 바로 앞을 골랐는데 요것이 미스테이크. 설마 맨 뒷줄엔 아무도 안 앉겠지 싶어서 마음 편하게 화장을 해보려 했으나 커플 하나가 내 바로 뒤에 앉는다. 나는 평소에는 화장을 잘 하지 않고 다닌다. 그러나 오늘은 꼭 어떤 연유에서든 화장을 해야한다. 합창 발표회가 있단 말이다. 나는 너무나 어쩔 수 없었지만 파우치를 꺼냈다. 화장이라고 해서 큰 공정을 들이는건 아닌데, 어쨌든 내 뒤의 두사람이 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 못내 신경쓰였다. 거울로 얼굴을 확인할 때마다 뒷자리 남자의 눈과 자꾸 마주친다. '보지마세요!' 할 수도 없고. 그냥 그 사람은 정면을 보고 있는데 어떤 여자가 버스에서 화장을 해보겠다고 난리 법석을 떨고 있는거니까.

 

 

 

(내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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