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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따뜻하고 즐거운 방향


돌아가는 세탁기 소리를 듣고 있으면 한편으로 안도감이 든다. 내가 딱히 무얼하지 않아도 뭔가가 옳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구나, 같은 것. 목적지로 향하는 차 안에서도 자주 그런 안도감에 휩싸이곤 한다. 내가 딱히 무얼하지 않아도, 무얼 할 수 없어도 가만히 나를 옳은 방향으로 데려다주겠지. 그런 안도감이 들면 이대로 영원히 달리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쨌거나 옳은 방향으로 가는 중일테고, 나는 계속되는 지루한 안온감에 젖을 수 있을테니까.

옳은 방향과 무위와 안온감에 심하게 집착하는 나를 보건대, 얼마나 '옳은' 방향에 민감하며 뭔가를 강박적으로 해대고 조금이라도 그르칠까 불안감에 휩싸여사는 사람임을 알 수 있지 않겠나. 온몸에 나침반을 박아 넣은 것 마냥, 내 삶이 어디로 흐르는지 요원해지는 시간의 작은 토막 앞에서도 그리 쉬이 아득해지고 불안해하니 말이다.

'제대로 살고 있는걸까요? 맞게 가는 걸까요?' 만나는 모든 이를 붙들고 툭하면 던지던 이 질문을 요즘은 하지 않는다. 방향 같은거, 좀 없으면 어때. 가다보면 가고 싶은데가 생길수도 있는거고, 원래 가려고 했던 곳을 돌연히 가고 싶지 않을 수도 있는거고. 그런거 좀 없으면 어때.

그러고보니 방향과 방황은 참 닮았구나. 방황은 '방향을 정하지 못한 상태'다. 그럼 방향은 '방황이 깃들지 않은 쪽'이겠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극심히도 밀어내는구나.

여기까지 쓰고보니 내가 다다르고 싶은 방향 하나가 생겼다. 방황을 품은 방향. 헤메고 갈팡질팡하는 와중에도 자꾸만 어디론가 나아가는 사람이고 싶다. 가는 도중에 길도 잃고 갑자기 가는 경로를 수정하기도 하고, 다 때려치우고 남의 자동차를 얻어타고 안온감인지 불안감인지 모를 어떤 것에 뒤죽박죽 젖어있으면서도 어디론가를 향해 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디론가. 그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즐겁고 또 따뜻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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