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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넛 , 던킨도너츠 레드벨벳 시리즈

 

△ 매주 수요일에는 던킨도너츠에서 레드벨벳 도넛 3개를 구입하면 글레이즈드 도넛 3개가 따라온다.

 

같은 이유로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린다. 던킨 도너츠도 개 중의 하나인데 '너무 달다'는 이유로 나는 너무 좋아하고, 내 주위의 몇몇 사람들은 너무 싫어한다. 단 맛을 워낙 좋아하다보니 등산이라도 갈라치면, 사람들이 기운내기 위해 가져온 초코바를 한 입먹고 죄다 나에게 준다. 너무 달아서 못 먹겠어, 라며. ('달아서 못 먹겠다'는 건 '맛있어서 못 먹겠다'는 의미인데, 도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한거죠!)

 

 

 

도너츠를 흠모해왔습니다

 

도넛인지 도너츠인지는, 과연 자장인지 짜장인지를 결정짓는 것 만큼 어려운 문제다. 표기어는 '도넛' 이지만, 왠지 도넛에는 도너츠나 도나쓰에 묻어있는 번들번들한 기름과 허연 백설탕이 쪽 빠진 느낌이라 매력이 없다. 표면의 촉촉한 기름과 혀 끝의 아슬아슬한 단 맛을 제하고 어찌 도너츠를 논하리오. 그 맛 만큼이나 이름도 쫀득하고 달달해 입에 쩍쩍붙는 '찹쌀 도나쓰'를 보라. 찹쌀 도나쓰가 많이 팔리는 건 결코 맛 때문만은 아니다.

 

 

아무튼 지금은 밀가루 먹거리의 종류만 논하더라도 스콘, 와플, 컵케이크, 프레즐, 마카롱 등등 끝이 없다. 맛을 차치하고서라도 그 모양과 색을 본다면 단박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만, 내 어릴 적에는 좋아할만한 간식들의 종류가 별로 없었다. 찬란한 불량식품들을 제외하고는, 기껏해야 붕어빵이나 국화빵, 혹은 왕만두가 다 였던 것 같은데 - 고등학교 무렵에 혁명적으로 '만득이 핫도그' 가 등장하긴 했다만. 그나저나 만득이는 잘 있나 모르겠다 - 그래서 도너츠는 어린 나에게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팥소가 넉넉하고 피가 얇아 팥소가 투명하게 비치거나, 설탕 위에서 한바탕 동그랗게 구른 것들이 동네 빵집에 '도나쓰'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잡고는 있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도너츠는 가운데가 뽕 하고 뜷려 손가락에 걸고 이빨로 물어뜯을 수 있어야 했기에 그들은 진정한 의미의 도너츠가 아니었다.

다섯, 여설 살때 만화를 많이 그렸는데 <도넛의 운명>이라는 작품까지 있는걸 보면 나는 도너츠를 정말 좋아했던 게 틀림없다. 이미 그 나이에 오마주를 알았으니. (원래 도너츠는 가운데가 뻥 뚫리지 않았는데, 대구타워 꼭대기에서 미끄러져 구멍이 생겼다는 슬프고도 논리정연한 이야기이다.)  

 

 

 

내 인생의 팔할이 던킨이어라

 

도너츠를 워낙 좋아하고 흠모하던 내게, 배가 동그랗게 뚫린 브랜드 도너츠의 등장은 내 인생의 일대 혁명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꼽이 뚫린 도너츠 뿐이랴, 세모진데가다 하트모양인데다가 심지어 머핀과 스콘까지 두루 갖추고 있는 가게라니. 던킨이 본격적으로 런칭을 하고 유행을 타던게, 내가 고등학생일 무렵이었는데 그때는 도넛에 익숙치 않은 대중들에게 고급화 전략을 써 접근했던 걸로 기억한다. 외국 훈남, 훈녀가 각기 던킨 도너츠에서 아침을 해결하다가 눈이 맞아 연애까지 해결한다던가, 목소리가 도넛보다 달콤한 목소리 훈남 성우가 '커퓌 앤 도넛' 이라고 광고 마지막에 살며시 읊조려주곤 했으니까. 성시경의 '잘자요' 못지않은 감미로움과 중독성. 정말로 던킨에 가면 목소리만큼 얼굴도 달달한 외국 보이가 커피 찍은 도넛을 물어삼키며 나에게 윙크를 해 줄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 얏흥.

 

던킨의 고급화 전략은, 자칫 일개 고등학생이던 내가 교복차림으로 던킨 출입을 망설일 딱 그만큼의 부담감을 주었지만 초등학교 동창이 동네 던킨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방앗간 들리듯 종종 들를 수 있었다. 도너츠를 얻어먹을 순 없었고 - 그 매장의 성격 더러운 여자 사장을 우리는 '싸모'라고 불렀는데, 도너츠 개수를 하나하나 체크해서 악명이 높았다 - 음료를 가끔 얻어마셨다.

 

그리고 대학 시절 내내, 나는 대학교 입구 맞은편에 위치한 던킨 안에 늘 위치하고 있었다. 남자친구를 기다리면서도 도너츠를 뜯고 있었고, 여고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나서도 도너츠를 삼키고 있었고, 술에 취해서는 꼭 던킨에 들러 머핀과 스콘을 샀고 다 팔리고 없으면 욕을 했다. 서울에 처음 면접을 보러와서도 홍대입구 1번 출구에 있는 던킨 도너츠 안에서 머핀을 먹으며 면접 준비를 했다. 4, 5년은 족히 지난 지금도 홍대에서 강남으로 이동할 때에는 늘 홍대입구 1번 출구에 있는 던킨 도너츠에서 머핀과 도너츠를 산다. 마시쪙.

 

맛보다는 모양이나 색으로 음식을 선택하고 좋아하고 깊이 빠지는 나에게, 새로 나온 던킨 도너츠 레드벨벳 시리즈는 정말 축복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붉은색의 먹거리인데다가 단맛인데다가 시큼새큼한데다가 심지어 배꼽이 뽕 하고 뚫린 도넛이라니. (뽕 하고 뚫린 배꼽안에 크림색의 치즈를 곱게 채워넣은 자태 또한 일품이다.)

 

 

△ 레드벨벳 시리즈. 처음에 출시 됐을 때, 이 중에 3개인가, 5개 이상을 사면 뭘 주는 행사를 했었다. 참았다. 

두 개 빼고 다 먹어봄. 

 

쌀로 만들어 몸에 좋은 미스터 도넛도 있고, 담백하다는 명동의 하라 도너츠도 유명하지만 난 아마 앞으로도 줄곧 던킨 도너츠에서 도넛과 머핀 따위를 사면서 살아갈 예정이다. 던킨 도너츠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술 취해 머핀과 스콘을 사러가고, 한 봉지 사들고 지옥철에 몸을 싣고. 

 

아침을 좋아하는 도너츠로 시작하는 일. 동그란 도너츠를 먹으며 동그란 하루를 살아가는 일. 나는 도너츠가 하염없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