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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생 살아남기 : 영양실조 걸릴까봐 무서워서

 

할인을 해준다기에 충동구매로 1.5리터 물병 24개를 샀어요. 문 앞에 놓여져 있는 비주얼에 숨이 턱.

시키면서도 택배 아저씨께 너무 미안했는데, 들어보니 정말 무겁더군요. 아저씨, 제 욕 하셨더라도 이해할게요.

 

 

나 항상 나른해

 

몸이 항상 피곤하고 나른합니다. 체력이 그다지 떨어지는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운이 불끈 솟는 것도 아니어서 늘 약간 물 먹은 솜같은 축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요. 체질을 잘 아는 선생님께 여쭤보면 언제나 '영양 부족 상태니 고기를 좀 먹어라'는 말을 하십니다. 타지에 나가면 흔히 '몸이 축 난다'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아무리 타지에서 잘 챙겨먹는다고 해도, 집밥만큼은 못한게 사실이고 - 집에서도 밥 구경을 해본적 없다는게 함정이긴 하지만 - 집안 자체가 고기를 즐기는 편이 아니어서 - 1년에 끽해서 서,너번 정도 먹을까요 - 체력이 바닥인게 딱히 고기를 안먹어서 때문인가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체력이 바닥인건 확실하니 고기라도 주워 삼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긴 합니다.

 

 

'고기 섭취를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밥하기 귀찮아서 차라리 방바닥 긁으며 굶는다거나, 짜파게티를 뿌셔 먹는 만행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자취생이 하물며 이 한몸 챙기자고 저녁에 고기를 사서, 가스렌지를 켜고, 구워서, 접시에 담아서 먹고 기름때 낀 설거지를... 말도 안돼. 고기는 먹어야겠고, 쉽게 섭취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문득 우리동네 유명한 만두가게가 눈에 들어옵니다. 아싸. 고기만두를 1인분 포장해서 왔는데, 꾸역꾸역 먹으면서도 도대체 고기는 어디있는지 모르겠어서 고기 섭취는 실패한 것 같네요.

 

 

 

자, 영양실조 걸릴까봐 무서운 자취생은 무엇을 샀는가

 

 

1. 파프리카

 

일단 택배로 뽜쁘리카를 2kg 샀습니다. 파프리카를 생으로 먹는걸 좋아하는데 - 음, 대부분의 야채를 생으로 우적우적 씹어먹는걸 좋아하긴 해요- 마트에서 사려면 조금 과장해서 애기 주먹만한 놈들이 한 개 삼천원씩 하잖아요. 인터넷 뒤져보니 파프리카 괜찮아 보여서 2kg 주문. 예전에 몸 챙기겠다고 당근을 10kg 샀는데 딱 하나먹고, 죄다 싹을 틔워버린 경험이 있습니다. 유기농이라 싹도 어찌나 빨리 트던지... 다 갖다버렸죠 뭐. 갖다버리는데도 시껍.

 

 

 

 

 

 

 

 

 

 

 

우왓! 파프리카 붉은 색과 초록색을 싫어해서 노랑과 주황으로만 중과 ~ 대과 정도로 보내달라고 했는데, 정말 실하고 굵직굵직한 놈들로 왔어요. 어찌나 큰지 보이시나요? 너무 커서 파프리카를 흔들면 딸랑딸랑 안에 있는 씨가 종처럼 흔들리더라구요. 앞으로는 파프리카 인터넷에서 구입하는걸로! 영양실조 걸릴까봐 샀으니 만두 1인분 다먹고 부른 배를 움켜쥐며, 파프리카도 하나 썰어 입에 털어넣었습니다. 아! 신선해.  

 

 

 

2. 우리동네 유기농 마트에서 산 돼지목살

 

육류 섭취가 필요하다고 해서 그냥 샀어요. 살때는 소고기인줄 알고 샀는데, 포크가 돼지고기라는 뜻이죠? 아무생각없이 썰린 모양이 정갈해서 삼.

잘 안보이지만 조그맣게 도축장 이름이 '복수' 라고 표기되어있는데, 왠지 무서움. '복수의 칼날아래 스러진 돼지여.'

 

 

 

 

 

3. 우리동네 유기농 마트에서 산 무농약 방울 토마토

 

 

방울토마토가 하나였다가 두개가 되는 기적. 씻지도 않고 하나 집어서 먹었다가 정말로 그대로 일어서서 다시 출동.

 

우리동네에 유기농 마트가 있는데요, 도로 하나를 두고 큰 마트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마트에 비해 매장이 작고 한산하니, 쇼핑을 할 때 괜히 시선이 나에게 자꾸 집중되는 기분이 들어서 신경이 많이 쓰이는데다가 가격도 마트에 비해 많이 비싼 편이니 선뜻 발길이 안가는게 사실이죠. 그렇지만 오늘은 몸을 챙기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불끈, 토마토가 참해보여 구입했습니다. 게다가 세일중!

 

 

넉살좋은 총각이 계산을 하는데 "이 토마토 진~짜 달아요. 진짜!" 라면서 거듭 강조를 하기에 모기만한 목소리로 "예에..." 하고 말았는데, 집에 돌아와서 장본 것들 갈무리하면서 아무 생각없이 토마토를 하나 집어 먹었는데 진짜 그대로 일어섰습니다. 와... 한번 집에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는건 진짜 미친짓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터라, 아무리 밤에 튀김과 떡볶이가 먹고싶어 미칠것 같아도! 혀끝에 닿는 오예스의 감촉이 그리워 입술을 깨물어 뜯어도! 집밖을 다시 나가는 귀차니즘 때문에 모든 걸 참아왔는데... 귀차니즘이고 뭐고 이 토마토를 다른 주부들에게 뺏기지 않아야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어떤 영화에 보면 엘리베이터 공포증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안타는 여성이 나오는데, 그 여성이 우연히 이상형 남자를 발견하고는 엘리베이터를 후루룩 타고 잽싸게 뛰어나가거든요. 마치 그 여성의 심정과 비슷했던 것 같아요.

 

다시 매장으로 달려가면서 드는 생각은 '세 통을 살까? 아니아니, 네 통을 살까? 어디 두지?' 라는 3과 4사이의 고민 뿐이었어요. 또 다른 고민은, 토마토 땜에 너무 성급하게 달려온 것 같지 않게 어떻게 나 자신을 표현할까... 아까 그 종업원한테 멘트를 어떻게 칠까... 하는 정도? (날 알아보지 못하게 점퍼도 바꿔입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매장에 도착하니, 달리면서 했던 고민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더군요. 정말로.

 

토마토가 다 팔리고 없었어요. 으헝. 불과 30분이 채 안된것 같은데! 절박한 마음에 아까 그 총각에게 "토마토 다 팔렸어요?" 라며, 토마토 땜에 뛰쳐왔노라고 온 몸으로 나 자신을 표현하고 말았습니다. 오죽 측은했던지 그 총각분이 "제가 사실 하나 사놓은게 있어요." 라고 자신이 사놓은걸 나에게 건네 줍니다. 미안해서 "괜찮아요." 라고 거듭 사양했는데, 그 '괜찮다'는 한마디의 스펙트럼은 참으로 모호한 것이어서 나는 사양이었는데, 그쪽은 긍정으로 받아들였던거예요. 거듭거듭 말했으니 '격한 긍정'으로 받아들였겠네요.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멘트를 칠게 없어서 계산하면서 "아... 집에서 더 사오라고 해서요." "거봐요! 제가 맛있다고 했잖아요. 하하 맛있게 드세요." 음... 그래 내가 집에서 더 사오라고 나한테 말했으니까. 거짓말 한건 아니니깐 뭐.

 

 

 

4. 우리동네 유기농 마트에서 산 유기농 딸기

 

 

 

 

마트가면 아무 이유없이 치즈와 요플레를 종류별로 사는 버릇처럼, 과일사러 가면 꼭 딸기는 그냥 집게 되지 않나요? 아무튼 냉장고 정리를 하려고 보니 왠 과일이 떡하니 들어있습니다. 확인해보니 딸기! 는 다행이 아니고, 엄마가 대구에서 서울로 택배 보낼때 아빠가 딸 먹으라고 보내준 키위네요. 이걸 언제 보냈더라... 한달은 족히 넘은 것 같은데, 아무튼 보관을 잘했는지 다행히 무른 것은 없네요. (뭐 이거 농약을 얼마나 친거야!)

 

아무튼 영양실조 걸릴까봐 무서운 자취생의 장보기는 이것으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