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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엄마

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본 일이 잘 없다. 도움을 받는 것에 익숙치 않는 환경에서 자라왔고, 성격도 자존심이 세고 자기 것을 쉬이 드러내보이지 않는 편이라 늘 모든 것을 혼자서 처리하거나 혼자서 처리하려고 끙끙댔던 성장 과정이다.

 

여성들은 정서적인 유대를 나누면서 관계가 더 깊어지는데, 나는 내 속에 있는 얘기를 미주알고주알 하는 편도 아니고 정서적으로 누군가에게 기대는 걸 싫어하기에 (사람은 익숙치않은 것을 싫어하게 마련이다) - 그래서 누가 기대는 것도 싫다 - 확실히 여성들보다는 남성들과 관계맺음이 쉽고 편한 편이다. 팩트만 툭툭 얘기하면 되니까.

 

어제는 하루종일 집에 있었다. 너무 힘들어서 바닥을 친 날이다. 지금을 기준으로, 내 삶에서 매우 소중한 하나를 잃었다. 내가 나를 잘 안다. 집안에서 불도 안켜고 주말 내내 웅크리고 있다가 내 안으로 내 안으로 들어가버리겠지. 이래서는 안되겠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볼 수 있다는 안면도에나 갈까. 갈 마음도 없으면서 안면도를 막 검색하다가 친구 아무나한테 연락해서 실없는 농담따먹기나 좀 할까, 생각을 하다가 집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익숙한 내 공간, 구성원들에게 정서적인 위안을 얻고 싶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엄마를 떠올린 적이 없었는데 어제는 엄마가 유난히 보고 싶었던 것 같다. 희한하지. 살면서 한번도 엄마에게 아쉬운 소리, 앓는 소리 한 적 없었고 내 속마음 내보인 적이 없었는데.

 

문득 나와 관계맺음이 그리 깊지는 않은 한 선생님이 떠올랐다. 그냥 무작정 저녁시간 되시냐고, 차 한잔 하고 싶다고 데이트 신청을 했다. 한편으론 좀 뜬금없었으리라. 선생님은 '찾아주어 고맙다'고 하셨다. 사실 나는 선생님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고, 말수가 적으신 분이라 길게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도 없다. 단 둘이 만난 적은 더더욱 없고. 늘 회사 행사에 껴서 얼굴이나 뵙고 몇 마디 나눈게 전부.

 

저녁 여덟시 약속을 잡아놓고는, 또 나는 계속 내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했고 저녁 약속을 취소하고 싶어했다. 아마 선생님과 관계가 조금 편했다거나 죄송한 마음이 없었다면 취소해버렸을 것이다. 어떤 핑계를 대서든. 그러나 그래서는 안되기에 급히 씻고 10분정도 늦게 홍대에 도착.

 

조금 걷다가 선생님이 봐둔 까페가 있다며 그리로 갔다. (걸으면서 선생님이 나에게 팔짱을 꼈는데 좀 설었다. 아 역시 엄마와의 스킨십이 부족했던 탓이다. 그렇지만 무척 다정한 느낌이어서 좋았다. 난 언제쯤 언니 동생들에게 스스럼없이 팔짱을 끼는 아가씨가 될 수 있을까?) 전통찻집이었는데, 홍대 앞 전통찻집에 대해 큰 기대를 안하고 있다가 깔끔하게 나오는 다기세트와 여러 차종류, 깔끔한 담음새에 마음이 금방 풀어졌다. 여기 좋구나. 무슨 말을 할까, 잠시 고민은 했지만 큰 걱정은 들지 않았는데 선생님과 마주 앉자마자 그냥 여러가지 속내가 술술 쏟아졌다. 까페에 앉아서 세시간을 쉬지도 않고 내리 떠들었으니. 난 자주 울컥거렸고, 끄덕거렸고, 쉴새없이 종알거렸다.

 

하하. 그리고 2차로 서교술집에 가서 또 여러가지 안주를 시켜놓고 선생님과 맥주를 각 1잔 (1병 아님)씩 비우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웠다. 새벽 두시가 되어서야 일어났으니까. 선생님이 나를 바래다주셨고, 나는 즐거운 공기를 옷 안 가득 품고와서 집에서 다시 엉엉 울었다. 엉엉. 내가 왜 너를 잃어야 해. 엉엉. 엉엉. 훌쩍훌쩍.

 

술 기운과 슬픔에 잠 못들어 괴로웠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마음이 한결 편하다. 잔뜩 울고나서 순해진 느낌이다.

 

어제 선생님과 처음으로 마주앉아 유심히 바라보며 느낀 것인데, 선생님이 우리 엄마를 닮았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다. 엄마와 얼굴이 참 많이 닮았다. 그래서 내가 무의식중에 선생님이 보고 싶었나보다. 내 깊숙한 곳에서는 그 분이 우리 엄마와 참 많이 닮은 사람임을 감지하고 있었나보다. 어제는 엄마가 보고 싶었던 하루. 그리고 하루 엄마를 해주신 선생님께 참 많이 감사한 날이다. 난 참 다행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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