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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4 마지막회 : 어설프고 서투른 내 청춘을 응원해 !

 

90년대로 나를 소환하던 마법의 주문. 꼭 이 인트로를 보면서 시작한다.

 

 

 

응답하라 1994가 끝났다. 감기기운을 끌어안고 두 편을 연달아 보았다. 화장실 가고 싶은 것도 참아가면서. 중간중간 진짜 많이 울고, 옛 생각도 많이 하고, 마지막 편 김성균의 엔딩 멘트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운' 드라마였다. 짝짝!

 

아직까지 20대라는 것이, 내년에도 20대의 끄트머리라도 붙잡을 수 있다는 것이 퍽이나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나도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겠지. "그 놈의 20대가 뭐라고." 싶지만, '이십대'라는 세 음절안에 모든 것을 구겨넣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렸고, 유치했고, 그래서 찬란했고, 누구나 누군가의 나정이었고, 누구나 누군가의 칠봉이었던 시절. 그래서 너무너무 아름다웠던 나날들.

 

내가 살아온 나날들을 역시 김성균이 아름답게 정의해주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었던 축복받은 세대' 라고. 그래서 아직도 나는 갓난쟁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아빠 스마트폰을 만지는걸 보면 깜짝깜짝 놀라고, 나보다 고작 서너살 어린 동생들과의 깊은 '세대차이'를 느낄때면 새삼 내가 살아온 시대를 절감하게 된다.

 

 

아아, 어쩌면 그리워라

 

마지막편을 보면서 갑자기 많이도 떠올랐던 어린 나날들. 2층살던 재홍이 집에서 처음만진 486 컴퓨터. 색색별로 모으던 색종이같은 플로피 디스켓.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모으던 씰. 신문 전단지 다 모아서 동생 접어주던 딱지랑 표창. 잠깐 했던 포트리스(게임 이름 정확하게 기억하는거 보면 놀랍다 놀라워). 처음 샀던 피아노 피스 <칵테일 사랑>. 노래가 너무 좋아서 책 귀퉁이에 빼곡히 가사를 적어두고 하염없이 따라 불렀었던 녹색지대 <사랑을 할거야>. 우리 집안에 음악을 들여놓은 장본인, 내 남동생이 사왔던 가요 믹싱 테잎. 일기예보, 유리상자, 더 블루... 하얀 여름 교복안에 빨간 레드데빌 티셔츠 입었다가 교무실에 끌려가서 무릎꿇고 벌선 것. 문방구마다 팔던 가수들의 직찍 사진. 친구에게 선물받은 조성모 사진 몇 장. 조성모 '초록매실'광고할 때 브로마이드 뗀다고 엄마랑 새벽에 일어나서 제일수퍼 앞에서 귀퉁이 칼질하던 겨울 새벽. 심현미라는 새침한 아이가 좋아했던 Y2K.

 

 

잘 지내라 내 추억들

 

음악, 그 시절의 브랜드, 유명 광고, 함께했던 사람, 풍경들. 꼭 십년전, 이십년전을 그리지 않더라도 이제는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너무나 빨리,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 음악도, 브랜드도, 광고도, 사람들도.

 

추억의 의미와 유통기한도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다. 예전엔 추억이 그저 '오래된 과거'였다면, 아주 신기하고 많은 것들이 끝도 없이 쏟아지는 요즘 세상에서는 '어떤 것의 등장 전과 후'로 의미되어 질수도 있겠지. 나의 경우에는 그 '것'들이 스마트폰이고 KTX다. (이 놈의 KTX !)

 

아직까진 주변에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이 얼마 없었을 때, 처음 산 아이폰을 자랑하며 "봐바. 지현아. 이런 것도 돼."하며 자꾸만 신문물을 내 앞에 들이대던 사랑했던 사람. 미친놈이 뭔 놈의 기계만 온종일 들여다보냐며, 내 눈앞에 들이대던 아이폰을 쳐다보지도 않았던 나. 아침에 눈뜨자마자 스마트폰으로 하루날씨를 체크한다는 뉴스 기사를 보고 '뭔 이 폰 중독도 아니고... 밖에 나가서 날씨보면 모르냐?' 혀를 끌끌차던 내 모습. 불과 3년 남짓한 사이인데 내 생활 전반의 모든 것들을 바꾸어 놓은 것 같다. (다른 이들도 물론 그렇겠지요. 스마트폰의 혁명은 실로 대단하니까!) 그래서 나에겐 '스마트폰 등장 전'이 한 역사고, 추억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폰을 열고 기온을 체크하고 - 특히 서울지방은 더더욱! - 수시로 웹툰을 확인하며 - 자기전까지 계속 붙들고 보다가 떨어뜨려서 얼굴에 처맞은 경우가 한두번이 아님. 스스로도 한심하다고 생각하지만 왠지 모르게 계속 하게 됌.- 친구들과 끝도 없이 카톡, SNS를 주고 받고 무슨 일이든 뜸들일 틈 없이 이야기 하고. 궁금한, 궁금하지 않은 사람들의 소식도 너무나 빨리 알 수 있고.

 

문자를 보낼까 말까 보낼까 말까. 내 문자 봤을까 안봤을까 봤을까 안봤을까. 말을 할까 말까 할까 말까. 아는척을 할까 말까 할까 말까. 오늘은 비가 올까? 우산을 가져갈까 말까. 저 사람 머릿속에는 뭐가 들었을까.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이집이 맛있을까 저집이 맛있을까. 선배는 오늘 학교를 왔을까 안왔을까. 내 편지가 도착 했을까 안했을까. 그 작가가 새 책을 언제쯤 낼까. 이 놈의 버스는 언제쯤 올까. 까. 까. 까.

 

스마트폰 등장으로 내 생의 모든 물음표가 거의 없어져버렸으니까. 시간대별로 섬세하게 쪼개어 기온과 날씨 상황을 체크할 수 있고, 내가 기다리는 버스가 세 정류장 전이니 오분만 더 오들오들 떨면 되고, 그 맛집은 댓글이 겁나게 달렸으니 두말할 것 없이 맛있을 것이고, 이메일 수신 확인 기능은 물론 보냈던 메일을 취소 해버릴 수도 있고, 누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하기도 전에 페이스북 스캔 한번이면 5분안에 50명이상의 근황확인이 가능하다. 처음 만나는 사람의 취향, 인간관계, 사생활은 말할 것도 없지.

 

물음표가 없으니 갈등도 없고, 궁금할 것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다들 실수 결벽증이 되어가나보다. 그래서 다들 갈등없는 완벽하고 완만한 인생을 그리고 그려나가나 보다. 어설픔도, 서투름도, 촌스러움도 용납이 되지 않는 세상. 그리고 (스마트폰을 손에 꼭 쥔) 청춘의 모습들.

 

스마트폰을 손에 꼭 쥔 내 모습도 어느날의 과거가 되겠지. 그때가 되면, 그래도 어설프고 서투르고 촌스러운 내가 보이겠지. 여태 잘 살아왔고, 잘 살아가고 있다. 나. 응사의 클로징 멘트처럼 그래, 나 잘해내고 있다. 어설프게, 촌스럽게 잘 해내고 있다. 멋진 추억을 안겨준 <응답하라 1994>에 감사하며. 정말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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