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있던 옛날 이야기 하나.
어떤 아낙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하나는 부채장수요, 하나는 우산장수라. 맑은 날엔 둘째가 우산을 못 팔걸 염려해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고, 흐린 날엔 첫째가 부채를 못 팔걸 염려해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단다. 지나가던 행인 이르기를 '이보게. 맑은 날엔 첫째가 부채를 잘 팔아 좋고, 흐린 날엔 둘째가 우산을 잘 팔아 좋지 않는가.'
우리는 매순간 '선택'을 한다. 그리고 기로의 입구에 서서 고민한다. 고민의 이유는 언제나 '더 좋고, 더 옳은' 것을 택하고 싶기 때문이다. 엊저녁이었나, 책 한권을 휘리릭 넘기다가 내 마음에 꽂히는 구절을 발견했다. '모든 것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어느 것을 선택하는 가는 본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어떤 사물의 긍정적인 면을 본다고 해서, 그것의 부정적인 면이 긍정적인 면으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다만 긍정적인 면을 선택할 뿐입니다.'
정말 그렇다. 수도 없이 들어온 얘기지만, 동전에겐 양면이 있어야 비로소 하나의 '동전'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고 손에는 등과 바닥이 있어야 비로소 온전한 하나의 '손'인 것이다. 손등만 있는 손은 손이 아니오, 역시 손바닥만 있는 손은 손이라 할 수 없을 것이기에.
하나의 '사건'역시 그렇다.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합쳐져야 온전한 하나의 사건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동전의 앞면을 보든, 뒷면을 보든 그것은 자유다. 그렇다면 뒷면이 존재한다는 것에 분개하지 말고, 그냥 동전을 뒤집어 앞면을 보는게 어떨까?
어떤 아낙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하나는 부채장수요, 하나는 우산장수라. 맑은 날엔 둘째가 우산을 못 팔걸 염려해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고, 흐린 날엔 첫째가 부채를 못 팔걸 염려해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단다. 지나가던 행인 이르기를 '이보게. 맑은 날엔 첫째가 부채를 잘 팔아 좋고, 흐린 날엔 둘째가 우산을 잘 팔아 좋지 않는가.'
우리는 매순간 '선택'을 한다. 그리고 기로의 입구에 서서 고민한다. 고민의 이유는 언제나 '더 좋고, 더 옳은' 것을 택하고 싶기 때문이다. 엊저녁이었나, 책 한권을 휘리릭 넘기다가 내 마음에 꽂히는 구절을 발견했다. '모든 것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어느 것을 선택하는 가는 본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어떤 사물의 긍정적인 면을 본다고 해서, 그것의 부정적인 면이 긍정적인 면으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다만 긍정적인 면을 선택할 뿐입니다.'
정말 그렇다. 수도 없이 들어온 얘기지만, 동전에겐 양면이 있어야 비로소 하나의 '동전'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고 손에는 등과 바닥이 있어야 비로소 온전한 하나의 '손'인 것이다. 손등만 있는 손은 손이 아니오, 역시 손바닥만 있는 손은 손이라 할 수 없을 것이기에.
하나의 '사건'역시 그렇다.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합쳐져야 온전한 하나의 사건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동전의 앞면을 보든, 뒷면을 보든 그것은 자유다. 그렇다면 뒷면이 존재한다는 것에 분개하지 말고, 그냥 동전을 뒤집어 앞면을 보는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