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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2010년 10월 14일 : 사랑하는 연인이 함께 와인을 마시는 날

매월 14일이 되면-14일은 늘 무방비상태에서 급작스레 찾아온다. 한달의 끝무렵에는 '아아 또 한달이 가네' 라는 진한 탄식이, 새달의 시작에는 '이번달은 진짜 열심히 살아봐야지!' 하는 새해 결심 농도의 10퍼센트 정도에 해당할까하는 새달 결심이 함께하지만, 14일은 바쁜 생활과 피로감에 치이며 새달을 별다를것 없는 헌달처럼 살고있는 나에게 갑자기 불쑥 찾아오는것이다. 얘, 너 잘살고 있니? 잘 지내고 있니? 벌써 또 한달의 절반이 지났어. 하면서 (아이 잔인해!) - 나의 느슨하던 마음의 템포에 스타카토 하나를 퐝! 찍는 양으로, 정신이 번뜩 든다. 나는 매월 14일이 되면 '이 날은 무슨 데이인가' 하며 기념일을 찾아보곤 한다. 제대로 챙긴 것은 거의 없지만. 애인이 있을때는 다들 의례적으로 하듯, 발렌타인데이와 화이트 데이 정도를 챙겼었고. 누가 그렇게 정한 건지, 애인없는 이들이 발렌타인 데이를 분개하며 '너넨 일년에 두번만 챙기지? 우린 달달이 챙겨보련다' 하면서 블랙데이, 로즈데이 양으로 매월의 14일마다 데이를 잔뜩 매겨둔 것인지 알아낼 방도는 없지만, 아무튼 내가 사는 이 시대는 매달 14일을 어떤 기념일로 정하고는 의미를 새겨두었다. 14일이라. 새달이 헌달처럼 시들해지고, 반복되는 일상- 이 문구. 참 진부하지 않나. 담고있는 내용만큼 표현도 진부하다-을 지루해하는 것도 지루해질 무렵. 그때 14일을 기념하면서 진부한 일상에 분홍색 쉼표하나 그려넣는 것이다. 15일은 채 오지 않았으니 '아직 그래도 절반이 지나진 않았잖아' 라며 새달을 계획대로 새롭게 살지못하는 자신에게 적당한 위로도 던질 수 있는 것이고, 달력의 까만숫자가 반복되는 업무만을 의미하지 않음을 새삼 깨달을 수도 있는 것이다. 14일. 적당한 기대와 적당한 위로를 하기에 적당한 날.    

2010년 10월 14일. 와인데이. 2011년에도, 2012년에도 그대로일 와인데이. 훈내나는 근육질의 남친을 마주하고, 샹들리에가 멋드러진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매끄럽게 빛나는 와인잔을 '챙!'하면서 부딪치진 못해도, 싸구려 와인병을 옆구리에 끼고 동네 놀이터에 앉아 종이컵에 벌컥벌컥 따라마셔도 나는 좋을 것이다. 약간 싸한 공기에 발개진 코끝을 찡긋거리면서. 매월 14일이면 챙겨줄 사람이 없는 걸 알면서도 혼자 은근한 기대를 품어보곤 한다. 오늘은 와인데이. 

매달은 아니더라도, 아무것도 아닌듯한 14일을 가끔은 챙길 줄 아는 그런 센스있는 남자와 결혼해야지. 세련된 감성의 소유자는 결국 나의 이상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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