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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침묵의 색깔

검정 바지를 한참 찾다가 새벽 한 시를 넘겼다. 도통 검정이 없구나, 나란 사람은. 대학 졸업 전까지는 검은 색을 걸칠 일도, 원할 일도 없었지만 나도 모르게 어른으로 향하는 길에 옷장 안에 야금야금 검정을 들이게 되었다.

지난 1월에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겨를이 없었다기보다는 마음이 없어서 아무 생각도 없이 화사한 민트색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도착해서 보니 다들 검정색을 걸치고 있었다. 이번엔 그러지 않으리라. 몇 해 전, 친구가 면접 때 입으라고 빌려준 검정색 자켓과 겨우 찾아낸 검은색 바지, 어제 입었던 흰색 셔츠를 걸치고 집을 나섰다.

밤이 깊도록 열심히 옷장 속에서 검은 색을 골라내며 처음엔 '검은색은 슬픔의 빛깔'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곧 '검은색은 침묵의 빛깔'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 결연하고 담담한 의지. 모든 것을 흡수해 제 안에 가두는 빛. 검은색을 줄곧 싫어해왔는데, 처음으로 검은 색이 좋은 색이구나 싶었다. 마치 좋은 사람처럼.

슬퍼하는 시간보다는 슬퍼할 준비를 하는 시간 때문에 지친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 집으로 가는 길 위에서, 지하철 안에서, 카페에서, 식당에서 실컷 울었는데 아마 오늘 나는 또 누군가들과 울고 있겠지싶어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슬며시 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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