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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또 받으세요.

△ 달랏 죽림서원에서 발견한 푸른 꽃.

 

 

 

며칠간 내 방이 쓰레기장이었다. 멀끔하게 치워놓고는 손님이 한 발을 들이밀자마자 '어유, 집이 엉망이에요' 하고 겸손을 떠는 것이 아니고 말 그대로 쓰레기장이었다. 나는 청소를 잘 못한다. 물건을 제자리에 두는 것으로 얼렁뚱땅 청소를 무마해보려 하지만 될리가 있나. 내일이 설날이기도 하고, 설날을 도저히 쓰레기장 속에서 맞을 수는 없어서 방을 좀 치워보기로 했다. 이 결심을 하는데도 반나절이 걸렸다. 주스를 한 잔 갈아마시고 시작해보려 했는데, 바닥에 깔아둔 요에 주스를 엎지르는 바람에 요까지 버려야 했다. 나는 왜 청소를 잘 못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좀 괴로워하면서 청소를 했다. 어젯밤엔 눈 위에 비가 퍼붓더니 오늘은 날이 화창하고 맑아서 밖으로 당장 나가고 싶었는데 설날 in 쓰레기를 생각하면 모른 척 하고 나갈 수도 없는 노릇.

 

청소를 하는건지, 단지 물건의 위치를 이동하는건지 원. 바닥에 이리저리 어지럽게 널린 옷들을 침대 위로 올리고 책정리를 하다 말고는 갑자기 화장실에 베이킹 소다를 뿌렸다가 또 설거지를 시작했다가, 하다말고 다시 책장을 들춰보다가 이런 식으로 겨우 청소를 마쳤다. 물론 침대 위에 옷은 그대로다.

 

청소를 마치곤 나가기도 애매해서 원고 정리를 다시 시작했다. 엄청나게 많은 양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쓸만한 글이 생각보다 얼마 없다는건 다행인지 아닌지 헷갈린다. 그래도 살면서 처음 해보는 원고 정리라는 것은 그간 써둔 글들을 즐겁든, 괴롭든 읽어내야만 하는 것이라서 시간이 제법 걸린다. 이 시간에 이력서를 하나라도 더 쓰는 것이 낫지 않을까? 나는 원고 정리를 한다는 핑계 아래 그냥 불안한 마음과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출판사에서 안 받아주면 내 돈으로 내겠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결과야 어찌됐든 핑계는 그만두고 원고 정리를 말끔하게 끝낼 계획이다. 어차피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내가 더 나은 글을 쓰리라는 보장도 없고, 회사에 다시 다니게 되면 입버릇처럼 '회사 그만두면 원고 정리할거야.' 하고 있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는 베트남에서 산 깔깔이를 입고 윤종신 노래를 하루종일 돌리면서 청소를 하고 글을 정리하고 있다. 책이 나오면 꼭 어느 귀퉁이에 '윤종신 짱'이라고 팬심을 담아야지. 베트남에서 산 깔깔이로 말할 것 같으면, 전혀 살 생각이 없었던 옷인데 너무 예쁘고 따뜻하다. 모르고 샀는데 ZARA MAN이다. 어차피 나에겐 어깨가 크니 여행에서 잠깐 입고 세탁해서 남동생에게 주려고 했으나, 벗을 수 없다. 왜 복학생 선배들이 깔깔이를 입고 다녔는지 이제 알겠다.

 

어쨌든 2009년부터 쓴 글을 쭈욱 한번씩 읽고 있는데, 내가 참 많이 변했구나 싶었고 다행이다 싶었다. 물론 후회의 순간도 많았지만! '야, .그때 그 남자를 잡았어야지!' '야, 그때 그 회사를 계속 다녔어야지!'하고 과거로 뛰어들어가 말리고 싶은 순간이 한두개가 아니다. 그 시절의 내가 온통 원했던 것은

1. 내 자신이 되는 것 , 진정한 삶의 방향을 찾는 것

2. 내 영혼의 반쪽을 찾는 것

3. 삶의 여유

이것뿐이다. 유치하고 고집세고 질투도 많고 눈물도 많고 툭 하면 상처받는 내가 있었다. 늘 회사 가기 싫다고 노래 부르고, 가기 싫은 회사를 다니느라 자주 아프고,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고 울고 또 좋아하고 사랑하고 울고.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 줄도 모르고 그저 울고 투정하고 불평하고 후회하고. 이런 내가 끝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래서 쓸만한 글이 적은 것이다.) 아유 부끄러.

 

그래도 지금 여기 서서, 잘했다고 잘해왔다고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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