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性域을 뛰어넘는 광고는 여전히 인기가 많다. 아주 옛날부터 수많은 남성의 제품들- 술, 담배, 자동차 등- 을 담당해온 광고 주체는 여성이었음은 두말하면 입 아프고, 이제는 여성 속옷이나 화장품, 디저트 류를 남성이 광고하는 것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여성의 이미지에 기대는 남성의 제품들이 전하는 메세지는 하나같이 '이걸 쓰면 당신은 여자들이 좀 더 뿅가는 멋진 남자가 됩니다' 이고, 남성의 이미지에 기대는 여성 제품들이 전하는 메세지는 '이걸쓰면 당신은 좀 더 남자에게 사랑받는 여자가 될 거예요.' 하고 속삭인다.
얼마전 짝꿍의 손을 잡고 영화를 보러 갔는데, 한 자동차 광고 역시 마찬가지의 (네오라고 차마 말하진 않겠다. 네오인지 네로인지!) 방식에 소구하고 있었다. 겁나 잘빠진 여자가 모는 차가 고장났다. 보통의 '도로 위 여자, 마침 차 고장' 광고는 남자가 그런 여자를 태워 주는데 하필 그 남자의 차는 주인 닮아 겁나 멋지다인 반면, 이 광고가 기존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남자의 차가 얼마나 엔진이 좋은지 여자의 차 째로 견인해준다. 여자는 그런 남자에게 뿅 가 목적지에 도착해 한마디를 던진다. '와쮸얼 네임?' 남자가 한마디 한다. '마이 눼임이즈 눼로~' 이런 쌍팔년도 소구방식이 아직까지 먹히다니! 유치함에 잠시 몸을 떨었지만, 초록색 신호등을 기다리며 횡단보도 앞에 멈추어 있을 때 내 앞을 지나가는 버스에 새겨진 송중기의 얼굴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고정되고 만다. 새로나온 배스킨라빈스의 솜사탕맛 아이스크림을 송중기가 내 입으로 떠먹여준다. 아~ 그렇다. 나도 그냥 그런 사람일 뿐.
성역性域에 대해서 운운하게 된 이유는 나를 골치아프게 하는 여성용품 때문이다. 어머니들은 놀랄만큼 다양한, 듣도보도 못한 각종 브랜드의 제품들을 가지고 있다. 어디서 그런 제품들을 접하는지 기가 찰 노릇인데 어머니가 나에게 건네 준 여성용품의 이름이 '내 남자가 선택한 ㅇㅇㅇ' 이다. (제품 사진을 싣고 싶으나 혹시나 몰라 http://blog.daum.net/toptrade114/6374717 링크로 대체합니다.) 받아들면서도 갸웃했다. '왜 이걸 남자가 고르지?' (지금 찾아보니 진즉에 단종됐다. 그럴 수 밖에.)
한 달에 며칠 정도 사용할 때마다 내 입에서 욕지거리 비슷한 것이 흘러나왔는데, 패키지에 적힌 그놈의 '내 남자'가 대체 누구길래 이런 선택을 맡긴 것인가 싶을 정도로 형편없는 제품력을 자랑했다. 나는 절대 내 남자에게 이런 선택권을 주지 않겠노라. (면도기나 헤어왁스 선택을 여성에게 맡기겠는가! 를 고민해봤으나 남자들은 대다수 맡길 것 같다. 우리집 남자들은 아무거나 주면 주는대로 군말없이 쓰는 편인데다, 심지어 내 선택을 더 좋아했다.) 사용할 때마다 맙소사, 하는 감탄사가 내 입에서 쏟아지기 바빴는데 네이밍은 제품력에 충실했다고 본다. 남자들이 여성 용품에 대해 뭐가 편한지 불편한지를 알리가 없고, 충분히 이런걸 선택할만한 가능성이 차고 넘치니까.
제품 이름을 '내 남자가 선택한~' 으로 지은 뒤에 '이걸 사용하면 좀 더 사랑받는 여자가 될거에요!' 라는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었던걸까 설마? 아니면 '절대 남자에게 이런걸 고르게 하지 마시오!' 라는 경고 메세지를 담고 싶었던걸까. 요즘 유행하는 것처럼 여성 제품에 남성만 갖다 붙이면 무조건 섹시하다고 생각한걸까. 광고 문구에 보면 믿을 수 없게도 전세계 36개 여성들이 극찬했다고 쓰여져 있다. 아무튼 여러가지로 나를 골치아프고 우습게하는 제품이다.
그나저나 엄마는 도대체 이걸 어디서 접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