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맑고 좋은 날이다. 이런 날엔 바람을 품고 자전거를 탄다. 얼른 집으로 가서 급하게, 아무렇게나 신발을 벗어던지고 어머니가 말아주는 따끈한 잔치국수 한 그릇을 먹고 싶은 저녁.
낮이 점점 길어진다. 이맘때의 하늘색은 복숭아빛이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푸른 빛과 마구 뒤엉킨 오렌지색이다. 오로라를 실제로 보게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아마 심장이 터져버릴지도 모르지.
어머니가 여름이면 어김없이 말아주던 잔치국수가 그립다. 잔치국수보다는 잔치국수를 둘러싼 배경들이 그립다. TV소리, 곧 더운 여름으로의 진입을 알리는 미적지근한 저녁의 온도, 마당에 짙푸른 잎사귀들.
돌아보면, 그리운 것들은 대부분 옳았다. 옳은 것은 그러니까 좋은 것이다. 비가 막 그친 교정을 날 앞서 터벅터벅 걷던 어깨나, 선배들과 자판기 앞에서 늘 마시던 실론티나, 눈도 채 못뜨고 새벽부터 입에 넣던 김밥같은 것들. 내달리던 불국사의 내리막길과 중국 대륙의 차창 밖으로 내다보던 별들.
'우리는 영원히 오지않을 내일을 기다리며 영원한 오늘을 산다' 고 일기장에 적었던 여덟살. 어쩌면 꼬맹이 무렵의 내가 훨씬 더 산뜻했을 수도. 우리는 그리움을 산다. 이 모든 순간이 그리움이다. 그리워질 것들은 옳은 것들이고, 옳은 것들은 좋은 것들이고, 좋은 것들은 그러니까 이 모든 순간이다.
그립게 살아야한다. 우리. 이 모든 순간을. 너무나 그리워질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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