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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추억의 국민 여동생

 

△5년만에 갑자기 본인사진 투척

 

 

 

나에게는 '국민'까지는 아닌데, 어쨌든 '국민 여동생' 시절이 있다. 스물 둘 때였나, 내가 좀 좋아하는 남자애가 있었고 그 애도 나한테 호감이 있었다. 둘이 맨날 밤새워서 채팅하고 학교에서는 데면데면한 이상한 관계를 이어갔는데, 서로 미적지근하게 눈치게임만 하던 차에 그 애 친구- 베스트 프렌드- 가 나한테 고백을 했고 나도 왠지 모르게 얼떨결에 예스를 했다. 왜 그랬냐고 물으면 지금도 모르겠는데 아무튼.

 

 

긁적. 나에게 고백을 했던 애는 축구 동아리 소속이었는데, 그 축구 동아리에 내가 원래 좋아했던 그 애가 주장이었고 아무튼 뭐 이런저런 남자애들이 다 뒤엉겨있는 그런 동아리였다. 경영학과. 법학과. 신방과... 또 무슨 과가 있었더라. 아무튼 고만고만한 또래의 남자아이들의 모인 집단이었고, 나는 그들의 세계에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자동 가입되어 매니저가 되었다. 관심도 없는 축구경기를 지루하게 지켜보다가, 경기가 끝나면 같이 잔디밭에 주저앉아 냉면이나 짜장면을 먹는게 나의 역할.

 

 

"반지야! 오빠 골 넣는거 봤냐?"

"반지야! 오빠 수비 하는거 봤냐?"

"반지야! 오빠 공차는거 봤냐?"

 

 

스탠드에 혼자 멀뚱멀뚱 앉아있을라치면 여서일곱 오빠들이 돌아가면서 늘 물었고, 항상 그들과 떼지어 몰려다녔기에 실상 남자친구와 연애를 한다기보다는 팀과 연애를 하는 느낌이었달까. 이상한 조합이었다. 시력이 분명 각자 다를텐데 얘 안경을 쟤가 끼고, 쪼끄만 티코를 몰고 다니는 오빠가 하나 있었는데 휘발유 대신 신나 같은 걸 부었다. 나는 차 뒷구석에 앉아서 언제나 조마조마했었다. 법대 건물에 가면 법학과 오빠가 알은 채를 하며 자기가 공부하고 있는 전공책의 끔찍한 사건사고 사진 같은걸 코앞에 들이밀며 나를 놀렸고, 엄청 멋진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오빠도 있었는데 굳이 태워준다며 나를 태워서 뒷자석에 매달려서 교정이 떠나가라 울부짖었다. 꾸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어떤 오빠가 영화보러 가자고 하면 흔쾌히 영화도 보러 가고, 또 다른 오빠가 밥 먹자고 하면 또 그렇게 하고, 밥을 먹고 있다가 남자친구가 오면 합석하고. 지금 생각하면 꽤 이상한데 그때는 또 그게 모두들 사이에 아무렇지가 않았다. 그 팀들과 워낙 잘 지냈으니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서도 정작 어색했던건 남자친구와의 1 대 1 사이였을 뿐, 나머지 오빠들과는 잘 지냈던 것 같다. 굳이 따로 만나거나 연락하지 않았지만 우연히 만나게 되면 참 반갑게 인사할 수 있었달까.

 

 

문득 십년전 사진을 뜬금없이 몇년만에 투척해 온 오빠 하나 때문에 깜짝 놀라 웃었다. 그러고보니 나 꽤 좋은 국민 여동생이었구나. 저런 것도 만들어주고. 생각해보니 한창 일러스트 프로그램을 배울 때는 축구팀 앰블럼 같은 걸 만들어주기도 했었다. 오빠들 번호 따서 유니폼 이미지도 하나씩 만들어주고. 아직까지 잘 쓰고 있는걸로 안다. 이제는 다들 슬금 결혼 소식도 건너건너 들리고 애기 낳은 소식도 들리고, 잘 살고 있는 것으로 안다. 아 그리고 그 축구팀 오빠들. 하나같이 다 잘 됐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근사한 대기업에 입사했고 (의문투성이다!) 뉴스기사에 종종 얼굴이 나오기도 한다. 국민 여동생 시절을 추억할 수 있게 해준 기억에 감사를 보내며.

 

 

 

(*) 아 나의 또 10년 뒤에는 누가 감사하다며 문득 인사를 건네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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