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들, 비틀
하루종일 배앓이를 하다 카톡 하나를 받고 온몸에 털이 삐죽 섰다. 며칠전 친구 어머니로부터 갑작스럽게 걸려온 '미남을 소개시켜 주겠다!' 던 전화가 생각났다. 어물쩍 웃고 넘겼는데 '미남'이란 단어만 아니었어도 쉽사리 흔들리지 않았을거다. 그렇다. 난 미남에 약하다. 왜 그렇게 미남을 좋아하느냐고 묻는 친구들에게 '미남이랑 사귀면 나한테 화를 낼 때도 잘 생겨서 넋을 잃고 바라보다 화를 잊게 된다'고 고백하지 않았던가. (내가 그래도 말만 이렇게하지 덮어놓고 미남만 좋아하진 않는다. 진짜로.)
아무튼 그 정체불명의 '미남'씨가 내 전화번호를 넘겨받곤 나를 카톡에 등록했나보다. 메세지가 왔다. 나는 모르는 사람은 카톡에 등장시키지 않는다. 부담스럽다. 얼마나 미남인가보자, 내심 궁금했지만 그의 프로필은 그냥 봄꽃 사진이었다. 꽃처럼 화사한 미남인건가. 미남씨가 내 사진을 몇 장 뒤져봤는지 - 공개 되어있는 줄도 몰랐다. 아뿔싸! - 이상한 말을 해댔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남성이고 마음에 품은 여성이 있고 그녀로부터 환심을 사고 싶다면 절대 입밖에 꺼내지 말아야 할 단어 세 가지를 알려주겠다. '꽃, 천사, 인정'. 그렇다. 미남인지 아닌지 검증도 안된 정체불명의 '미남'씨에게로부터 나온 말이다. 원문을 그대로 옮겨주겠다.
/ 뭐가 꽃인지, 사람인지 구분이 안가는 사진입니다.
/ 눈과 마음이 행복합니다.
/ 넘넘 보고프네요. 제 눈에 천사입니다.
/ 천사씨, 인정하시나요?
하아. 정체불명의 미남씨 얼굴을 상상해보면서, 이 정도 파괴력의 메세지를 만회하려면 얼마나 미남이어야할까를 생각한다. 변요한? 좋다. 변요한 본인이 나오면 인정. 꽃과 사람을 구분하는 방법은 딱 하나다. 사람은 말을 한다. 욕도 잘 한다. 여차하면 싸대기도 날린다. 묵묵부답으로 답장이 없는 내게 '너님이 천사인걸 인정하라'는 쐐기는 이 밤에 친구에게 전화하게 만들었다.
/ 야, 너네 어머니가 나한테 누구를 소개시켜 준다고 했는데 못하겠다고 말 좀 드려줘. 제발.
*
얼마전 같이 식사를 했던 연애박사 박박사의 이상한 조언 하나를 떠올린다. 연애박사 박박사는 내가 아는 인물 중에 연애 방면에 있어서라면 실로 대단한 인물로 한 집단의 십여명 여성가운데 7명을 사귄 전력이 있다. 이 정도면 전력인지 전과인지 모르겠는데, 그 7명 여성이 심지어 다 예쁘다. 섹시하거나 귀엽거나 청순한 매력이 있다. 짐작했겠지만, 그는 같은 집단의 남성들과 사이가 좋지 못하며 대부분의 여성들과도 사이가 좋지 못하다. 당연하지. 사겼다가 헤어졌는데. 연애박사 박박사와 친분을 유지하려면 그와 사귀지 않은 여성이면 된다. 그리고 몇 안되는 여성이 바로 나다. 주변에서 '너도 언젠가는 쟤랑 사귄다' 라고 줄곧 이야기했으나 아쉽게(?) 서울로 올라오는 바람에 그의 여자가 되어볼 영광을 얻지 못했다.
연애박사 박박사에게 최근 들은 엄청난 사실 하나는 이러하다.
'어차피 남자들은 다 이상하거든? 그러니까 나랑 사귀면 왜 안돼? 어차피 딴 놈이나 나나 다 이상한데.'
와. 연애박사 박박사가 단순히 여자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빠른 로테이션은 단지 이성에 대한 호감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거였다. 그는 실로 대단한 마인드를 갖고 있었다. 흔히 이성을 두고 경쟁상태에 놓이면 '그놈이 나보다 무엇이 잘났고 내가 무엇이 못한가'를 스캔하게 되는 반면, 연애박사 박박사는 '너나 나나 거기서 거기' 라는 마인드를 깔고 가는거였다. 그렇구나. 그가 한 집단에서 3명 정도를 사귀었을 때 나는 '설마 다음번은 없겠지.' 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4명을 우습게 5명, 6명, 7명을 돌파하는 걸 보고는 놀라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 마인드가 정말 궁금했달까. 도대체 뭘까. 저 자식은? 밑바닥에 깔려있는 마인드가 제일 궁금했었는데, 그걸 이제야 들은 것이다.
문득 궁금하다. 연애박사 박박사는 여성에게 어떻게 접근할까? 무슨 말을 늘어놓으며 여성의 환심을 살까? 천사와 꽃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을까? 만약에 천사와 꽃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고도 그렇게 많은 예쁜 여자들을 낚는데 성공했다면 그건 또 뭔가.
/ 천사씨, 인정하시나요?
미남씨의 마지막 카톡을 들여다보면서 차단 버튼을 만지작 거리고 있다. 저 천사 아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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