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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배


한 개인의 음식 취향은 단박에 결정되어 줄곧 바뀌지 않는 것도 같지만, 또 의외로 너무나 쉽사리 변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예를 들어 임산부가 평소엔 입에 대지도 않던 것들을 기꺼워하며 게걸스럽게 탐하는 모습이 그렇다.

나는 단맛나는 과일을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데, 참외나 귤은 입에 잘 대지 않는다. 가만보면 오렌지 주스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주스가 담긴 납작한 델몬트 병을 더 좋아했지. 줄곧 입에 대지 않다가 어른이 되어 급속도로 사랑에 빠진 과일 몇개를 꼽으라면 바나나와 감. 이번 설날 제사 때도 제사를 마치자마자 크고 실한 상주 곶감 몇개를 손에 꼭 쥐고 물어뜯고 있으니 지나가던 엄마가 한마디 하시네.
"감 좋아하지도 않더니 왠일?"

감은 우리집에서 홀대받던 과일 중 하나인데, 굳이 냉장보관하지 않고 이리저리 굴려도 알아서 익고 잘 썩지도 않으니 까맣게 잊고 있다가 나중에 "으악!" 하면서 발바닥에 들러붙은 툭 터진 감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는 식이랄까.

내가 본격적으로 감과 사랑에 빠진 계기는 몇해전 어느 까페에 출시된 홍시 슬러시 때문이다. 한 잔에 6천원이나 하는 홍시 슬러시에 도대체 홍시가 몇  개나 들어앉은지는 모르겠지만, 그 맛에 눈을 번쩍뜨고는 그 해 여름이 다 가도록 출근 도장을 찍었다. 홍시 슬러시에 대한 애호는 해가 바뀌어도 사그라들지 않아서 이듬해에도, 그 이듬해에도 - 다행히 홍시의 인기는 건재했다 - 홍시 슬러시만 퍼다 마셨고 '감'의 탁한 주홍빛이 점점 이뻐보이기 시작하더니 단감, 감말랭이, 곶감으로 애호 영역이 확장되었다.

생각해보면 감처럼 활용도가 무궁무진한 과일도 없지 않나. 잎은 말려서 차로 마시지, 말려서 꼬들꼬들 씹는 맛에 먹지, 푹 익혀서 숟가락으로 살살 파서 먹을 수도 있지, 완전 쪼글쪼글하게 말려서 오래두고 먹지. 진짜 감은 짱이다. 왜 감을 그동안 좋아하지 않았을까.

이번 제삿상에 곶감을 비롯해 단감이 올랐는데, 크고 실한 두 개를 슬쩍 가방에 챙겨 올라왔다. 오늘 아침에 열어보니 알맞게 잘 익은 투명한 주홍빛이다.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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