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_')()()()/배

홍시 떡볶이


자취방에 아침부터 꿀 떨어지는 소리.
"우에에엙끄아아아아으아아꽤에에에젠장!"

집에 푹 퍼진 홍시가 있어 요걸로 떡볶이 만들어볼까 싶다. 좋은 요리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난 천재가 아닐까? (히죽)

고추장에 된장 살짝 풀고 깻잎 양껏 찢어서 넣어주고는 불려둔 가래떡을 넣었다. 설탕 대신 홍시로 단맛을 낼 참이었는데, 생각보다 매워서 꿀을 좀 넣어야지 싶다가 병을 쏟아버렸다. 이 비싼걸!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정말 몰랐는지, 한손으로 황급히 병을 들어올리고 바닥을 닦는데 나머지 손이 이번엔 냄비 안에 병을 미끄러뜨려 떡볶이가 아니라 꿀볶이가 되었다. 꿀도 울고 나도 운다. 거의 새 것이었는데 상황을 수습하고보니 반병이나 비어있었다. 울까.

그나저나 아무리 맛있게 만들어도 엄마맛은 절대 안난다. 비결이 뭘까. 고추장?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집에 놀러와서 엄마가 만들어준 떡볶이를 자주 먹었는데, 그 중 요리에 꽤 관심과 소질을 보이던 친구가 "비결이 뭐냐"를 물어서 엄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는 "그런거 없는데. 우하하!" 라고 호탕하게 웃었고, 나는 열일곱 당시에는 '고수들은 각자 자기만의 비기가 있는 법. 알려주시기 싫은건가!' 라고 생각했으나 그 뒤 유심히 지켜본 엄마가 모든 요리를 아무 레시피도 없이 마음대로 마음껏 만드는 현장을 자주 목도하고는 '진짜 마음대로 만드는거군!' 하고 놀라버렸다. 게다가 그 마법의 허연 가루를 냄비에 쏟아붓는 장면도 함께 목격되곤 했다.

며칠전에 그 친구가 또 문득 "근데 너네 어머니 떡볶이 비결이 뭐야?"라고 다시 묻는게 아닌가. 떡볶이를 먹고 나오던 참도 아니었는데. 너 이녀석, 설마 내가 그 오랜 세월동안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다고 생각한거냐. 게다가 너 그렇게 떡볶이를 좋아하는 녀석이었던게야? 하긴 떡볶이를 좋아하든, 그렇지않든 우리집 떡볶이는 꼭 한번 먹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집은 떡볶이보다 김밥이 쪼끔 더 맛있다. 옥주현이 필살의 다이어트로 모두를 놀라게 했을 때 본인이 당장 끊은건 떡볶이라며 '그 맛은 이미 당신이 알고있는 맛' 이라고 했다. 그러니 못 끊지. 내가 떡볶이를 끊었으면 47키로를 거뜬히 찍었을텐데. (끊어도 안될까봐 계속 먹는다, 얏흥♡)

그러나저러나 문득 내 나이 무렵의 엄마를 돌아보니, 머슴처럼 밥을 잘 먹는 네살 다섯살 꼬맹이들과 툭하면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게 일상이었던 남편을 이끌고 어찌 여기여기까지 온 것일까싶다. 꿀 반병 쏟아서 울고싶은 나약한 엄마 나이가 여기 있는데. 엄마는 너무 빨리 어른이 되었다. 그래서 내 떡볶이에는 엄마 맛이 안난다. 세월 조무래기라서.


'('_')()()()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또 다른 나  (0) 2016.02.28
공차 : 카카오 백프로  (0) 2016.02.21
  (0) 2016.02.15
누룽지  (0) 2016.02.14
맛있는건 0칼로리...라면서요!  (0) 2016.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