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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천국 불신지옥

 

 

△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전생에 천사였을게다. 천국에서 내려온 천사. 소속은 김밥천국.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물어보면 두말할 것도 없이 김밥과 떡볶이다. 김밥과 떡볶이는 사시사철 시시때때 먹어도 물리지도 않는다. 오죽하면 평생 한 가지 음식만 먹고 살아야 한다면 김밥이라고 0.1초의 고민도 없이 말했을까. 두어달에 한번 고향에 내려가면 엄마가 꼭 준비해놓는 것도 한솥 가득한 떡볶이와 산처럼 쌓아올린 김밥. 오른손엔 포크를 쥐고 왼손엔 두툼한 김밥 한 줄을 손에 쥐고 '아니 뭔 아가씨가 이렇게 많이 먹냐' 는 엄마의 걱정을 브금BGM으로 깔며 볼이 터져라 쉴새 없이 밀어 넣는게 집에 내려가서 제일 처음 하는 일이다. 김밥과 떡볶이에 대한 사랑은 가히 지독해서, 오죽하면 수능때 점심으로도 떡볶이를 싸갔다. '수능날엔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라'는 어느 선배의, 혹은 참고서의 조언이었나. 자신있던 언어에서부터 시간에 쫓겨 답안지를 겨우 제출해냈던 나는, 힘겹게 수리영역을 겨우 마치고 재수를 결심하면서도 떡볶이는 참 맛있게 잘 먹었다. 그 해 수리 영역을 마치고 누가 뛰어내렸다던 뉴스가 들렸던 것 같기도 한데, 나는 같이 둘러앉아 밥을 먹던 친구들의 뜨악한 시선을 받아넘기며 떡볶이를 열심히 먹었다. 재수를 해야하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재수를 했다면 서울대를 갈 수 있었을까? 나중에 받아든 성적표는 떡볶이를 먹고 꾸벅꾸벅 졸면서 친 수2 영역을 제외하곤 모두 괜찮은 성적이었다. 언어는 전국 상위 1% 안에 들었고, 고3 내내 생전 처음으로 고액과외까지 받아가며 힘겹게 씨름했던 수학도 1등급을 찍었으니. 영어와 제2외국어도 만점이었고. 중요한건 수2영역. 떡볶이를 신나게 먹고 신나게 말아먹은 수2 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그러고보면 떡볶이 때문인건가!) 가족들과 함께 살 때에도 퇴근길엔 꼭 김밥을 사갔다. 엄마가 '집에 멀쩡한 밥 놔두고 사먹는다'며 타박을 하면 '안 싸주니 사먹는다'로 응수하곤 했었는데. 옥주현이 뚱뚱한 예전의 껍질을 버리고 날씬한 몸매를 자랑하며 했던 말도 기억이 난다. '떡볶이를 끊어야 한다' 라고. 아니, 떡볶이와 몸매를 바꾸다니. 이해할 수 없다. 십년이 지난 지금도.

 

 

며칠전에 아버지와 통화를 하다가 '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어요...' 라고 했더니, 엄마에게 보내주라고 말하겠다 하셨다. 그 다음날 바로 제주산 귤 한박스가 도착했는데, 나는 귤은 개코도 관심없고 귤 한박스를 다 헤집으며 떡볶이 찾기에 골몰하였으나 귤 귤 귤 밖에 없어 그 실망감이 극에 달해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귤 받았나?'

'떡볶이 보내주라고 한다며!!!!!!!!!!!!!!!!!!!!!!!!!!!!!'

'아이고 미안타 아부지가 깜빡했다'

'귤말고 떡보끼이이이이이이이!!!!!!!!!!!!!!!!!!!!!!!!'

 

 

이럴때는 '개딸' 같다. 같다, 가 아니고 이다, 로 정정. 떡만 볶으면 될 것을 죄없는 아부지도 볶고, 딸내미 떡볶이 보내주라는 아부지 등쌀에 어무니도 한바탕 볶인다. 그렇게 온 가족을 들들 볶은 결과, 폭설이 내렸다는 대구의 어느 아침. 새벽부터 떡볶이를 만들고 김밥을 부지런히 싸서 눈발을 뚫고 푹푹 쌓인 눈길을 헤쳐 아침에 어머니가 '당일 특급' 우편을 보낸다. 등기번호를 부르라는 개딸의 외침에, 깨톡으로 등기번호를 보내면 개딸은 수시로 택배 진행 상황을 체크한다. 어머니가 택배를 보내는 당일 아침, 설 특수 때문에 하루 늦게 도착할 수도 있다는 우체국 직원의 말에 어머니가 근심 가득한 얼굴로 '꼭 오늘 들어가야 하는데...' 라며 노심초사 했다는 이야기와, 택배가 당일 도착했을 때 어머니가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

 

 

드디어 떡볶이와 김밥을 받아든 나는, 잠시 뒤 저녁 약속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코트며 가방을 다 내팽개치고 짐승처럼 왕왕 김밥과 떡볶이를 물어뜯기에 바쁘다. 그리고 개딸은 비로소 다시 천사로 돌아온다. 소속은 김밥천국. 엄마가 김밥을 워낙 두껍게 말아서 한손에도 잘 안들어오는 굵기의 김밥을 앉은 자리에서 세줄 정도 먹어치우고, 가래떡으로 만든 두툼한 떡볶이도 자르지 않은 줄로 치면 두어줄을 먹어치우면 그제야 '나갔다와서 또 먹어야징' 이라는 심정이 되고 차분해진다. 김밥은 냉동실에 넣으면 맛이 없어지기 때문에 어제도 자기 직전까지 먹다 잤는데,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이 땡땡 부었다. 오늘은 디톡스를 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김밥 두 줄을 다 먹어치우고 클리어. 엄마가 보낸 김밥이 열...두세줄 쯤 되었으니, 그걸 다 먹었구나? 허허허. 물론 떡볶이의 흔적은 없어진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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