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品/것

눈물

 

 

 

 

 

매년 이맘때면 엄마가 사과박스를 보낸다. 한 알 한 알 신문지로 꼭꼭 야물게 싸 보낸다. 임금에게 보내는 진상품쯤 되려나. 식구들 중에 유독 과일을 좋아해서 두어달에 한 번씩 집에 내려가는 날엔, 아예 박스포장도 뜯지 않은 과일들이 나의 손길만을 기다리고 있다. 오셨습니까, 오픈해주소서. 제주에서 온 한라봉이라던가, 어디에서 온 귀한 복숭아라던가... 내가 뜯어 한 입 꽉 깨물고 그제야 식구들에게 권한다. '뭐 괜찮네.' '작년께 더 좋았는데.' '이건 좀 더 사놔도 되겠네. 어디서 샀다고?' 아무도 평가를 바라지 않는데 꼭 평가를 해준다.

 

 

이번 추석즈음에 딸내미 내려오신다고 엄마가 사과를 한박스를 사놨는데 영 퍼석거리고 맛이 없어 궁싯댔더니, 엄마가 어느 과수원에서 사과를 사 보냈다.

"딸~ 사과 받았으? 이번껀 맛있지?"

"응!! 진짜 맛있다!! 좀 더 사놓지?"

 

 

며칠전이었나. 마지막 사과 한 알을 꺼내면서 '아 사과 업엉' 슬픔을 토로했는데, 그 한마디를 어떻게 들었는지 그 날 저녁에 엄마가 또 다시 사과를 보냈다. 한 알씩 야무지게 싼 사과향이 박스를 뜯기도 전에 진동을 하는데, 엄마가 일본에서 사온 작은 거울이 들어있었다. 툭하면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거울 좀 그만보라고 타박을 하면서도, 거울 좋아하는 딸내미 생각이 나서 사오셨나보다.

 

 

엄마가 일본에 잠시 다녀온 건 알고 있었다. 엄마는 일행들과 배를 타고 갔는데, 일본으로 떠나는 저녁과 일본에 도착한 새벽 '현해탄을 건넜다' 라는 짤막한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러나 나는 그 이틀에 걸쳐 누군가때문에 엉엉 우느라 -그래 너- 엄마를 챙길 여력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미안하다. 너도 같이 미안해하자.) 엄마의 일본 여정이 어땠는지는 잘 모르고 돌아오던 날 아빠에게 전화해서 울었다고 했다. 무사히 다녀온 것에 대해, 무거운 짐을 끝까지 잘 짊어지고 돌아온 것에 대한 안도감에, 어쩌면 살아계실 날이 얼마 남지않은 어르신들에게 좋은 선물을 해드렸다는 벅차고도 슬픈 마음에, 이런 저런것들이 뒤범벅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새벽, 일찍 일어났다가 문득 엄마가 올려둔 일본 여행에 대한 글을 보게 되었다. https://story.kakao.com/san13579/h510pRV1w30

 

 

엄마가 돌아오던 저녁, 아빠가 엄마의 전화를 받고 마중을 나가면서 '느이 엄마 전화해서 울더라. 전화 한 통 해줘라.' 라는 전화를 걸어왔다. 엄마에게 전화를 했더니 엄마는 피곤해했고, 그냥 잘 다녀왔다고 했다. 그래 그건 부부의 영역이니까 건드리지 않기로. 우리 엄마는, 아니 내 엄마는 참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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