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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매일의 얌,채식

가지 피클 만들기

 

 

 

 

 

 

 

 

 

 

 

 

 

 

오늘 새벽 꽤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빗소리에 깨어 '의심할 수 없는 빗소리' 라고 짤막하게 적어둔 뒤, 이번엔 창밖을 내다보지도 않았어요. 어두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테지만 분명 너무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으니까요. 어둔 방에서 침대에 어정쩡하게 몸을 걸치고 있다가 그만, 그만! 가슴을 묵직하게 짓누르는 생각은 그만두고 요리를 하자! 라는 다짐을 하며 몸을 벌떡 일으켰습니다.

 

 

여자들의 유리병을 향한 욕망은 상상초월입니다. 유리병만큼 여자들을 자극하는 주방의 요소가 또 있을까요. 텅빈 채로 가만히 두어도 예쁘고, 뭔가를 채워도 참 예쁘죠. 저는 유독 주방기기들에 드글드글한 욕망을 숨기지 못하는데요, 자취생 신분에 식품건조기며 미니 오븐 따위를 구비하고 있습니다. (물론 1년에 한 두번 꺼낼까 싶습니다만.) 에어프라이어가 처음 나왔을 때도 정말 갖고 싶었어요. 튀김은 잘 먹지도 않는데다가 버글버글 끓는 기름에 갓 튀겨낸 것만 좋아할꺼면서 말이죠. 처음 월급을 타서 산 것도 오븐이니 말 다했네요. 아무튼 여자들은 대부분 유리병과 접시, 컵에 대한 애착이 있을껍니다. 저도 몇 년전 겨울엔 갑자기 하얀 머그에 꽂혀서 모양과 종류별로 30가지 이상을 사모았더랬어요. 유리병에 대한 여자들의 욕망을 믿지 못하시겠다면, 작년인가 갑자기 폭풍처럼 밀려왔던 '마이 보틀 열풍'을 떠올려보면 쉽게 짐작가능할꺼예요. 투명한 마이보틀. 자기가 얼마나 뭘 예쁘게 담아서 먹는지 여자들은 보여주고 싶고 보고싶고 자랑하고 싶단 말입니다. 마이보틀에 담긴 수많은 과일이며 음료 따위의 담음새와 빛깔을 보면 입이 쩍 벌어지죠.

 

 

아 아무튼 전 올해 추석에 밤 70개를 손수 삶아 까다가, 만들어본 사람만 안다는 그 맛있다는 밤잼을 만들었고 성공했으나! 만든 잼은 따끈할 때 즉시 유리병에 옮겨 담아야 된다는 사실을 간과한채 변변한 병 하나 없어 잼을 몽땅 버렸다는 슬픈 추억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새벽 네시에 일어나서 몇 시간 밤을 깠다가 살짝 다치기도 했는데, 직장인의 그 금쪽같은 휴일과 유기농 설탕과 허공에 날려버린 가스비 따위는...쎄굿바이. 병 하나 없어서 그 참사를 겪었으면서도 굳이 병을 사진 않았거든요. 그러다가 이번에 작은 병을 몇 개 사게됐어요. 원래 병을 사려던 건 아니고, 또 무슨 머그 바람이 불었는지 투명한 빅머그를 갖고 싶어 이리저리 뒤지다가 적당한 녀석을 발견했는데 가격이 꽤 비싸더라구요. 그래서 두 개 샀어요. (응?) 그리고 투명한 머그와 함께 이것저것 예쁜 병을 팔던데 역시 가격이 싸진 않았으나, 마데인 이태리라고 적혀있어서 작은 병 몇 개를 샀습니다. 아 예뻐라. 병을 샀으니 안에 뭔가를 담아줘야겠고, 마침 집에는 얼마전 사둔 값비싼 유기농 야채들이 쌔근쌔근 잠자고 있어요. 사실 피클은 그리 좋은 야채로 만들 필요가 없지만, 빛깔 좋은 가지가 있어서 가지 피클을 만들어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 가지 피클 만드는 법

 

 

1. 가지를 먹기 좋은 크기로 손질합니다. 병에 야채를 담을때는 꽉꽉 눌러 채워야하므로 가지와 함께 넣을 야채를 골라보아요. 전 고추를 못 먹어서 피클로 보내버릴거예요. 잘 가라. 가지를 피클로 만들때는 살짝 건조시킨다는 분들도 많던데, 저는 전자렌지 쓰는건 싫어하고 건조 시키기엔 시간이 부족하니 그냥 생으로 갑니다.

 

2. 열탕 소독을 합니다. 병 국jar soup. 꾸르르 김이 오르면 소독 완료. 바글바글 끓여주세요. 물론 끓는물에 덥석 유리병 집어넣는 대참사는 안되요. 처음부터 넣고 같이 끓여주세요.

 

3. 병소독을 끝냈으면 촛물을 만들어 볼게요. 물, 설탕, 식초를 씁니다. 흑설탕말고 백설탕을 써주세요. 월계수 잎 + 피클링 스파이스에 통후추를 좀 더 넣었습니다. 피클링 스파이스가 없으면 식초물에 후추를 써도 된다네요. 전 다음엔 피클링 스파이스를 쓰지 않고 향신료를 따로사서 만들어 볼까해요.

 

4. 촛물 팔팔 끓으면 유리병에 준비된 야채를 꾹꾹 눌러담고 뜨거운 촛물을 부어주면 끝. 참 쉽죠?

 

5. 저기 보이는 동그란 갈색 과일은 사과 대추예요. 촛물이 좀 남아서 고추 + 파프리카 + 사과 대추 한 알 넣어봅니다. 결과는 삼일 뒤에. 뭐 참고로 말씀을 드리자면 대추로 피클을 만드는 사람은 아직 없었어요.

 

 

유리병으로 총 4개 만들었습니다. 야채가 듬뿍 담긴 유리병의 아름다운 자태를 감상하면 뭔가 스스로의 주부됨에 흠뻑 취하게 된다는. 방 안에 감도는 달짝지근한 냄새가 좋은 토요일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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