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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매일의 얌,채식

냉장고를 부탁해 : 맑은국의 여왕

 

 

 

 △ 부탁도 안했는데 아침부터 혼자서 <냉장고를 부탁해> 프로그램 찍은 느낌.

 

 

 

간밤에 주인도 없는 빈 집을 술취해 들어가 잘 빌려쓰고는, 침대를 정리하고 물을 끓여 식히고 오늘의 일정을 미리 정리하면서 친구에게 나가겠다 전화하려는 찰나. 안내방송이 울려퍼진다. '오늘 소독 있습니다. 각 가구는 문을 열어주세요' 그래? 집도 잘 빌려썼는데, 소독이라도 해놓고 가야되지 않겠느냐 싶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오늘 소독있나본데. 내가 이거 기다렸다가 싸인하고 갈게. 참. 나 티셔츠 하나만 빌리자. 어제 입었던 옷에 왠 술냄새가 진동을 한다야' 친구가 마침 올라오는 길이라며 30분내로 도착을 한단다. 그럼 기다리지 뭐. 

 

 

슬슬 점심때가 다가오기도 하고, 새벽부터 대구에서 올라오는 친구가 몹시 시장할 것 같아서 기다리는동안 밥이라도 지어놓자 싶다. 나는 싸가지가 있는 친구니깐. 냉장고를 대충 뒤져보니 견적이 나온다. 귀찮아서 요리는 잘 안하는데, 요리하는걸 무척 좋아하긴 한다. 백미와 잡곡을 섞어 밥을 올리고는, 냉장고에 있는 몇가지 재료를 꺼내 국이라도 끓이면 되겠다. 준비 시작!

 

 

 

 

 

 

 

 

 

 

 

 친구의 냉장고를 털어보자. 계란 두 개. 대파 조금. 애호박 반 개. 빨간 고추. 다진마늘과 고추가루도 발견. 이거면 되겠다. 서랍을 뒤져보니 말린 표고. 멸치. 맑게 끓여서 계란을 풀어야지. 언니가 맑은 국의 여왕이라고. 친구가 오면 따뜻할때 얼른 먹게 해주고 싶어서 마음이 조금 동동거렸다. 뭐, 남편 퇴근 준비하는 여잘세. 육수를 내고 파를 예쁘게 썰어넣었다. 파가 하트. 말린 버섯도 넣어 육수를 좀 더 우리고, 적당히 우러나면 나머지 재료-랄게 딱히 없지만-를 넣는다. 애호박은 반달썰기로, 고추는 씨를 빼고 곱게 썰어 잔잔한 불에 끓이면 된다.  

 

 

 

 

 

 

 

깔끔하게 소금간을 하는 편. 찬장에 소금은 찾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간장이 보이지 않는다. 간장 한 큰술만 딱 넣으면 진짜 좋을 것 같은데. 냉장고 저 구석에서 초밥용으로 추정되는 간장을 찾았다. 이거. 간장인건가? 일본어 배워야겠다. 전에 태국여행 갔을 때 아끼라는 일본인 청년이 너무 괜찮았는데, 걔는 영어를 못하고 나는 일본어를 못하니 얼마나 안타깝던지. 아무튼 간장이라 믿고 써보기로. 마무리 할 때 고춧가루를 살짝 넣으면 개운하다.

 

 

 

 

 

 

 

계란은 마지막에 잘 풀어 냄비에 휘 둘러주고 절대 젓지 말기. 우리 계란은 휘젓지 않기로 해요. 알아서 봉긋하고 부드럽게 부푼다. 요리과정에 쓴 조리도구는 딱 두 개. 칼 한자루랑 맛보기용 국자. 고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기에. 국자를 들고 맛을 보면서 꽤 만족스런 결과물과 친구의 도착 시간을 얼추 맞췄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는데, 양반은 못되는구나. 문이 삐리릭 열린다. '야 니 옷 꺼꾸로 입고 뭐하노?' 티셔츠를 뒤집어서 입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 때 알았지만. 뭐. 따끈한 국과 밥냄새로 친구를 맞아주니 '종종 밥이나 해놓고 가라'며 친구가 기뻐한다.

 

 

 

 

 

 

 

잘 먹겠습니다. 역시 요리를 할 때 최고로 기쁜 순간은 누군가가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을 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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