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잘 보냈어요?'
'어'
주말 잘 보냈냐는 동료의 인사에 쌩~ 아침부터 목소리에 잔뜩 가시를 묻히고는 짧은 대답만 마치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무슨 일있어?' 메신저로 토닥토닥 물어오는 안부에 이 날 이 순간만을 기다린 사람처럼 다다다 쏘아붙이다 감정이 격해져서 책상에 물컵을 쾅 내리치고는 밖으로 나와버렸다. 작은 회사에서 갈 곳이 뭐 그리 있겠는가. 계단을 총총총 내려와 층계참에 쭈그리고 앉아 창밖을 노려보면서 중얼거렸다. '분노 10'. 십점 만점에 십점이다.
친구와는 바로 화해를 했지만 주말내내 온 몸 가득 뜨겁고 부글부글하던 것이 쑥 사라지고 나니, 새삼 마음이라는 것이 신기하다. 겪고 또 겪으면서도 여전히 신기하다. 나를 이렇게 힘들게 괴롭고 하다가고 순식간에 쑥 하고 사라져버리다니. 일순간에 뿅 사라져버릴 실체도 없는 어떤 것 때문에 이토록 격렬하게 아침부터 뜨겁게 괴로웠고 결국 모니터를 바라보며 눈물까지 줄줄 흘리지 않았던가.
사랑이란 감정도 똑같은걸까? 갑자기 '사랑 10'이 되어 온몸이 뜨겁게 부글부글하다가 갑자기 어느날 쑥 하고 사라지는걸까? 최근 읽은 어떤 책에서 '사랑이란 100에서 하염없이 0을 향해 가는 과정이라고, 그렇지만 우리는 0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듯 사랑을 한다'라고 씌여있었단 말이지. 나는 곧장 그 문장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누구를 많이 좋아하다 손을 놓는 그 순간에도 나는 똑같이 좋아했다. 다만 '분노 10'의 단계여서 '사랑 10'이 잠시 자리를 비운것일 뿐. 마음의 공간은 어차피 정해져있는거고 거기가 늘 '사랑 10'이면 좋겠는데, 이런저런 감정들로 '사랑10'의 자리를 비켜줘야 하니까. 미움한테도 1을 주고 섭섭함에게도 1을 주고... 나중에는 다른 감정들로 마음이 꽉 차버려서 사랑의 자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다 비로소 손을 놓고 나면, 그리고 미움과 섭섭함과 분노를 꼭꼭 아주 오랫동안 몇 번이나 되풀이해 씹어삼키고 나면, 그 미움과 섭섭함과 분노가 0을 비로소 찾으면 그때서야 뒤돌아보면 여전히 '사랑 10'이 있는 것이다. 그럼 뒤늦게 '아, 난 너를 여전히 참 많이 좋아하는구나...' 하는 거니까.
마음의 빈 공간을 늘 잘 관리해야겠다. 분노가 1밖에 없을 때 얼른 0으로 만들고, 섭섭함이 1밖에 없을 때 얼른 0으로 만들어야지. 그러게 말이다. 너에게 쏟아부은 내 정성과 마음이 어디로 간단말인가. 사랑은 늘 그 자리에 있을텐데. 우리가 모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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