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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을 만나느냐에 따라 어떻게든 달라진다. 무한한 가능성.
아무리 생각해도 나만한 사람이 없다.
어제 문득 떠오른 문장 하나. 좋은 아침이었다. 마감 후 비로소 맞은 휴일. 햇살은 너끈하다 못해 후끈하게 방 저 구석까지 들이치고, 침대에 가만히 누워 햇살이 벽에 만드는 그림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좋은 향초를 피우고 가사가 아름다운 음악을 틀었다. (곧 걸려온 친구녀석의 전화가 모든걸 망쳐버렸다만.)
푹신한 이불에 몸을 파묻고 햇살을 바라보니까 문득 내 인격의 고매함이 딱 저절로 알아차려지면서 내 자신의 존재에 대해 감탄하게 된 게 아니고, 정말로 아무리 생각해도 나만한 사람이 없는거다. '만하다'는 말은 '타당한 이유를 가질 정도로 가치가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란다. 그러니까 '나 만하다'는 말은 '이러이러한 이유로 나 정도의 가치가 있음'을 뜻하겠지. 생각해보자. 세상에 나와 완벽하게 똑같은 이유(외모, 성격, 어떤 버릇, 취향, 특기, 나를 이루는 그 어떤 것이든!)로 나 정도의 가치가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우주에 단 하나, 나란 사람뿐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만한 사람이 없는거다. 마찬가지로 너만한 사람도 없고.
*
우리는 그러니까 살면서 수시로 잊게되는 이 '만하다'라는 보조형용사를 잘 붙들고 살아야한다. 세상이 험난하고 각박하고 빠르고 요란스러워서 자꾸만 잊게되지만 나만한 사람 없고, 너만한 사람 없다는걸 번번이 꺼내 되새겨야한다. 친구 하나가 연애를 한다. 요란하게도 한다. 자꾸만 나에게 'A는 어떤 애냐고 묻는다'. 아니, 내가 A가 아닌데 말도 제대로 섞은적 없는 A가 어떤 애인지 어떻게 알 것이며, 설사 내가 A본인이라 한 들 나를 뭐라고 설명하겠는가. 그렇다면 묻는 너는 설명할 수 있는가. 너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를.
내게 고민상담을 하는 친구들이 많다. 몇 차례 반복되면 마음이 괴롭다. 누군가의 어려움을 나눠지기 싫다는 말이 아니다. 충분히 정성들여 조언해주고 귀담아 듣는다. 그러나 정작 상대편은 상황의 해결을 위한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고 똑같은 말만 되풀이 한다. 이쯤되면 '상황의 해결'이 목적이 아니고 그저 쏟아내기가 목적이구나 싶다. 내가 '감정의 쓰레기통' 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일단 액션 전에 쏟아내야 한다. 마음속에 가득찬 것을 쏟아내야 비로소 공간이 생긴다. 마음에 공간이 생겨서 뭔가를 해볼 의지도, 힘도 생긴다. 근데 문제는 그 쓰레기통의 입장이다. 내가 감정도 없는 쓰레기통이면 군말 않겠으나, 똑같은 감정의 쓰레기를 누군가에게 퍼붓기 전에 고민해봐야한다. 당신이 퍼부은 그 감정의 찌꺼기를 결국 껴안는 것도 당신과 똑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임을. 누군가의 쓰레기통이 되겠다고 기꺼이 자처하는 그 마음을 적어도 조금은 헤아릴 줄 알아야한다.
너그러운 휴일 아침을 다 망치고, 너의 전화를 붙드느라 결혼식에 늦을뻔했으며 네가 퍼부은 감정의 찌꺼기때문에 아직도 마음에서 소화가 되지 않는다. 네가 나를 적어도 친구라고 생각했다면, 쓰레기통 취급이 아니었다면, 함께 붙든 고민의 결과 정도는 알려줄 수 있어야하지 않겠느냐? 사사건건 '싸웠어! '만나기로 했어!' 그 다음에 어쩌란 말이냐. 막말로. 둘이 만나 단물은 알아서 나눠먹고 쓰레기만 나에게 투척하겠다는, 그게 연애심리라는거면 난 앞으로 쓰레기통은 사양할 것이다.
사실 늘 번번이 사양하고 싶다. 애정과 신뢰 때문에 이런 조언을 해준다. 마음이 좀 더 가벼워 지기를,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나와의 대화에서 꿈틀꿈틀 마음의 여유를 얻어갈 수 있기를. 그리고 확실하게 붙들 것은 세상에 너만한 사람없고, A만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이다. A를 사랑하기로 했으면 A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라.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해결하고 네 선에서 접을 것은 네 선에서 접어라. 도저히 안되면 그 사람은 네 사람이 아니다. 아주 작은 물건에도 인연이 있다. 손에 붙들기까지 험난하고 어렵고 지친다면 네 인연이 아닌 것이고, A만한 사람이 없다는걸 알고 꼭 얻고 싶으면 '너만한' 너를 포기해라. 너는 세상에서 '너만한' 사람이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인정하면서 왜 A에게는 여지를 주지 않느냐.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너만한 사람없고, A만한 사람없다.
그리고 나는 너에게 적잖이 실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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