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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그리워라

 

 

 

 

 

 

 

 

 

 

 

 

아 그리워라. 12월호 기사를 준비하다가 문득 태국 빠이의 작은 골목에서 새벽을 밝히던 아줌마가 생각났다. 새벽 일찍 일어나 의자에 앉아 아줌마가 달그락거리며 익숙하고 야무진 솜씨로 하루를 여는 것을 바라보았다. 새벽은 추워 작은 난로를 쬐다가도 내 곁으로 밀어주었고, 식빵을 구워 접시에 가득 담아 함께 테이블에 앉아 먹었다. '꼬레(코리아)' '응.응'. 그러다가 손님이 오면 재빨리 일어나 뜨거운 죽을 뜨고 계란을 내주고 뭔가를 구웠던 아줌마. 나는 아줌마가 구워준 식빵을 꼭꼭 씹으면서 아줌마의 모습을 오래 바라봤다. 그런 내 곁에 앉아 이런 저런 사람들이 죽을 먹고 말을 걸고 다시 일어나 어디론가 갔다.

 

 

담배를 하루에 수십대도 넘게 태우던 여행사 할머니도 나를 참 예뻐했다. 작은 골목에서, 편의점에서 마주칠 때마다 나를 꼭 껴안아주고는 사람들에게 '마이 뉴 도터' 라면서 인사를 시켰다. 할머니가 알려준 맛있는 국수집에서 자주 면을 사먹었고, 거기 있는 중국인과도 얘기를 많이 나눴다. 타이완에서 온 그림을 그리는 소녀는 내 모습을 하나 남기겠다고 포즈를 취해보라 했었다. 나는 술병을 꼭 쥐었다. '왜?' '술 잘먹는 여자로 기억되고 싶어. 하하'

 

 

야시장에서 작은 악세서리를 파는 마이민과도 친해져 나중에는 내가 좌판을 봐주기도 했었다. 거지꼴이었지만 마음은 최고로 좋았다. 치앙마이에서 미술을 공부했다는 마이민은 어느날 엽서를 골라보라며 나에게 직접 그린 엽서를 한 장 선물했다. 나는 검정 하트가 눈을 꼭 감고 있는 엽서를 골랐다.

 

 

말은 하나도 통하지 않지만 말할 필요가 없었던 곳. 떠나는 날 새벽, 아줌마를 꼭 끌어안고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또 올게요. 또 올 수 있을까 의심을 하면서 또 오겠다는 약속을 동시에 했다. 여행사 할머니를 찾았는데 아직 문을 열지 않았었다. 할머니가 그랬었는데. 너 다음번에 오면 우리집에서 재워줄거야. 할머니 담배 좀 그만 피워요. 너 다음에 오면 끊는다, 약속!. 할머니 담배 끊게 하려면 다시 가야하는데.

 

 

빠이에서 만난 웨일러와 함께 빠이를 떠났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중얼거렸다. 나는 한국가면 시간도 없고 돈도 없어서 이제 일을 해야하고 그러면 여행은 또 언제 올 수 있을지 모르겠어, 너무 슬프다. 웨일러가 이런 말을 했다. 쯔시엔, 시간은 치약과 같아서 짜고 또 짜면 어떻게든 나오게 되있는거야. 너 되게 멋지다, 그런 표현은 어디서 배웠어. 그런가? 하하하.

 

 

모든 이유들을 뒤로하고 꼭 가보고 싶은 곳, 꼭 해보고 싶은 것,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한 해를 정리하는 12월의 앞에 (미리) 서고 보니 올해 나의 생일선물로 혼자 떠난 태국여행이 어떤 여행보다 아름답고 근사했다. 사실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일을 안한지 3개월째에 접어들었고, 서울에서 비싼 월세를 감당하고 있었으며, 서울로 떠나올 때 '집에 손 벌리지 않겠다'고 말한 나의 존심은 부모에게 내가 회사를 그만뒀다는 사실조차 알리길 거부했다. 어찌됐든 나는 태국으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도 울었고, 한국으로 돌아온 어느 날에도 그만 엉엉 울었다. 그만 마음이 따뜻해서 왈칵 울었다.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면 다시 꼭 껴안아 줘야지. 나를 기억 못해도 하나도 섭섭하지 않을거다. 

그리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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