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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바다

 

 

 

 

 

살면서 바다가 좋았던 적이 있나.

단 한 번도.

 

 

*

 

 

삶을 관통하는 뚜렷한 순간과 감각 몇 개를 데리고 산다. 갓 태어난 빨갛고 말랑한 동생의 볼을 꼬집어 보던 일, 그 입에 묽은 밥알을 으깨어 수저로 떠넣은 어느 날. 누군가 내게 '지현아, 좀 더 웃어야지!' 하는 통에 억지로 눈가를 잔뜩 찌푸리니 아유 예쁘다, 좋아하던 소리와 번쩍이던 카메라 플래시, 아마 다섯 살. 곤히 잠들었던 나를 흔들던 손길, 눈부신 겨울 한낮, 방안의 온기가 그리워 섧게 우는 내게 울지말라 쥐어준 딸기. 기차에서 뭘 좀처럼 안 사주던 엄마가 큰 맘먹고 사준 도시락 셋트와 댕그르르 흘려버린 방울 토마토 한 알 같은 것들. 멍게도 그렇다. 엄마와 아빠를 따라 시장에 갔다. 어린 날이었지만 다정한 날은 아니었다. 매섭다 여겼고 그날따라 잔뜩 웅크려있었다. 시장 모퉁이에서 멍게를 본 아빠가 이쑤시개에 멍게를 쿡 찍어 내 입에 밀어넣으려 했다.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맛있는거야.' 더 힘껏 고개를 저었고 아빠도 포기하지 않았다. '맛있는거야.' 엄마도 옆에서 거들었다. '그래, 이거 맛있는거야.' 나는 아빠 손을 힘껏 밀어냈던 것 같다. 온몸으로 저항했다. 그깟 멍게 하나에. 할 수만 있다면 아빠와 엄마를 다 내 삶에서 밀어내고 싶은 어린 날들을 보냈다.

 

 

멍게를 한 번도 먹은 적 없다. 아빠는 문득문득 잊었다. 늘 나에게 권했다. 멍게를, 해삼을, 성게를, 가리비를, 조개를, 오징어를, 골뱅이를, 소라를, 게를. 난 단 한번도 먹은 적 없다. 싫었다. 비리고 징그러웠다. 아빠는 바다에서 나고 자랐고, 그래서 명절이면 꼬박꼬박 바다를 아주 길게길게 보아야했고, 동해바다는 그 빛이 무척이나 아름다웠지만, 단 한 번도 바다를 안 좋아했다. 사촌동생들이 바다에 놀러나가자고 몇 번이나 나를 조르면 마지못해 겨우 나갔다가 발바닥에 묻는 모래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먼저 쏙 들어오곤 했다. 산에 가면 그렇게 마음이 어쩔줄 모르게 좋더니 바다는 영 모르겠더라. 정확히 말하면 동해바다겠지.

 

 

할머니집에 가려면 보통 차를 타고 예닐곱 시간 정도 걸린다. 나는 그 시간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다.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는 어느 시점부터는 창 밖에 눈길을 둘수도 있는데 딱히 그러지도 않았다. 하염없이 똑같은 음악을 듣거나 음악이 없으면 가만히 앉아 까무룩 잠에 빠졌다가 잠에 다시 빠지기위해 잠깐 일어나는 식으로 그 긴 시간을 때웠다. 싫었으면 어떻게든 가지 않았을테고 좋았으면 기꺼웠을텐데 이도저도 아니었으니 나는 대부분 자동차 뒷자리에 실려 예닐곱 시간을 써버리는 것으로 내 의무를 다했다. 이번 명절도 그랬다. 동생은 어떻게든 가지 않았고 나는 아침에 문득 '강원도 가자.'는 말에 짐을 쌌다. 강원도에 도착해서도 난 방에만 가만히 있었다. 올해는 대부분을 사버리는 통에 명절음식준비랄 것도 없었지만, 굳이 나까지 붙어서서 거들지 않았고 아주 오랜만에 무한도전을 봤다. 시집가서 그럴꺼냐는 욕을 먹었다. 시집가면 알아서 잘 한다고 대꾸했다. 잘할꺼니까. 집 앞 바다가 걸어 5분인데 얼씬도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 산소에 가자는 친척들의 아주 아주 계속적이고 찐득거리는 청도 거절했다. 벽에 걸린 우리 남매의 사진을 이제 떼가라는 말에 냉큼 액자를 챙겼다. 몇 년만에 보는지도 모르겠는 작은 엄마에게 썬크림을 빌려줬다. 엄마 립스틱이 예뻐서 발라봤다. 남자가 없냐는 큰 아버지의 말에 성격이 더러워서 그렇다는 말대답을 돌려주었으며, 또 은근히 다가와 남자가 정말로 없냐는 작은 아버지의 말에 빙긋 웃었다. 자기 딸이 먼저 가겠다는 말에 '남일 신경 안써요.' 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당신을 아직도 제일 싫어한다고도 중얼거렸다. 온통 물것들 천지인 상에서 겨우 오징어 회 몇 점을 먹었다. 밤송이를 내게 보여주겠다며 손을 다쳐가며 엄마가 밤송이 째로 밤을 따왔다. 사진을 몇 장 찍었더니 친척들이 온통 몰려들어 사진을 보내달라고 해서 사진을 일일이 다 보내줬다. 이게 바로 재주는 누가 넘고 돈은 누가 번다는 그 속담의 구현. 집에 간다고 하니 고모가 문득 다가와 와락 나를 껴안았는데 섬짓해서 몸을 뒤로 빼고 싶었다. 안겨있는 동안 숨을 못 쉬었다. 맥락없는 누군가가 내 몸에 닿는게 싫다. 아빠가 아픈 할머니 손을 잡아드리라고 몇 번이나 다그쳤는데 그러는 척 하면서 그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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