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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2015년 9월 29일 : 고자라니

 

△ 손대면 토옥하고 터질 것만 같... 으아아악!

 

 

 

 

 


오늘 딱 세 번 웃었다. 온 방이 떠나갈 정도로 크게 웃었는데 첫째는 낮에 서민

교수님의 신간 <서민적 글쓰기>를 읽다가, 둘째는 좀전에 <레터스 투 줄리엣>을

보다가, 그리고 마지막은 방금 본 <야인시대>의 '고자라니' 영상. "내가 고자라니

!" 라면서 응앙대는 남주의 울음소리에 내 웃음소리가 겹쳐졌는데 너무 웃겨서 급

기야는 책상을 꽝꽝 치면서 웃었다. 그런 내가 좀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무튼 <야인시대>가 낳은 최고의 명장면 '고자라니'도 벌써 10년이 지났건만 오

늘날도 '고자'는 이 시대를 꾸준히 관통하는, 사랑받는(?)키워드다. 우리 시대가

'고자'를 잡고 놔주질 않는다. 말끝마다 '고자'를 붙이기만 하면 뭐든 설명 불필

요해지는 마법의 접미사. 연애고자, 영어고자, 요리고자. 고자,고자,고자. (먹고자

의 그 고자는 아니다.) 


심지어 오래 알던 한 남자는 틈날때마다 자기가 고자라며 셀프 인증을 하더니, 급

기야 나중에는 나를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어디에 포인트가 있는걸까. 하물며

고자일지라도 내 너를 좋아한다, 아니면 나는 너를 좋아하지만 난 여전히 고자

다. (아 물론 그 남자는 처음엔 '연애'고자라며 연애를 빠뜨리지 않았지만, 나중

엔 다 날려먹고 당당히 본인이 퓨어 고자라고 몇번이나 거듭했다. 갑자기 슬퍼진다. 내가 고자를 좋아하게 되었다니.)


집에 풍선넝쿨이 처음 열렸다. 몇 해전 씨를 받아둔 것인데 이렇게 예쁘게도 열렸

다며 한달쯤 전에 엄마가 사진을 보내왔다. 명절을 맞아 집에 가니 아직도 풍선이

예쁘게 매달려있었다. 나는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고자 생각을 했다. 단박

에 생각한건 아니고, 풍선넝쿨이랑 이래저래 놀다가 생각났다. 나의 정신적 음란

함에 깜짝 놀랐지만, 내 이 식물을 순식간에 고자로 만들어 버릴 수 있구나 싶었

다. 내가 아는 어떤 선배는 나에게 여자는 너무 솔직하면 안된다고 충고했었다.

그리고 스웨덴 세탁소는 이런 노래를 불렀다. <그래도 나 사랑하지>. 니가 대머리

가 되고 배가 나와도 나는 여전히 너를 좋아할 것 같은데, 너도 나 사랑하냐가 주

된 내용이다. 아니, 니가 이혼사유인 대머리가 되어도 너를 좋아해준다는데 남자가 알아서 여자를 모셔도 시원찮을 판국에, 어쨌

거나 여자는 대머리와 똥배를 감수하면서도 남자에게 나를 사랑해달라고 중얼거린다.
겨우 풍선 맺은 존재 하나를 고자로 만들어버리겠다며 벼르고 있는 어떤 여자를

좋아해줄 남자가 있을까? 이게 다 고자를 10년째 아끼고 사랑하는 이 시대정신 때

문이다. 그리고 내 주제가는 앞으로 <그래도 나 사랑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