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品/것

키티

 

 

△ 몸값 두 배. 인종(?)차별은 아니겠지요.

 

 

 

나는 키티를 썩 좋아하진 않는다. 어렸을 때는 여느 여자애들처럼 열광했던 것도 같은데 금세 시들해졌다. (입이 없어서 싫었던 걸까. 마찬가지로 입 없는 미피는 참 좋아했는데.) 친구들 중에는 지금도 온 집안을 키티로 장식하는 친구들도 있는데, 뭐 예를 들면 커튼 공책 이불 밥상 슬리퍼 심지어 운전대까지! 커서 내 돈주고 키티를 사본 적은 다 선물용이었다. 너무 예쁜 수저세트라던가 목각 도장같은 것들. 그러니까 키티라서 빛을 발할 수 있는 것들만 샀고 남에게 줬다.

 

 

아. 그러나 왠일이란 말인가. 옴짝달싹 할 수 없는 딱 하나가 있었으니 바로 키티 거울. 사실 키티 거울은 몇 달전부터 계속 살까, 말까를 고민했던 물건인데 일단 새로운 거울이 갖고 싶었던 터이고 키티 거울만이 내게 가지는 특별한 정서가 있기 때문이다. 여덟살 때, 나를 유독 예뻐했던 외할아버지는 백화점에 종종 나를 데려가 이것저것을 사주셨는데 그 중에 키티 거울도 있었다. 뭐, 나는 '금다래 신머루'를 유독 좋아했지만. (금다래 신머루를 기억하는 사람이 도대체 몇이나 될까? 검색어도 몇 개 안걸리는 정말 옛날 캐릭터. 아 옛날이여.)

 

 

 

 

 

 

 

키티 거울을 정말 좋아했다. 지금도 거울을 좋아해서 예쁜 손거울을 사 모으는 편인데, 거울은 그때도 참 좋아했나보다. 10년전에 샀던 거울도 아직 잘 들고 다니고 있다. 아무튼 뭐 만원 넘는 냉면이나 팥빙수에는 선뜻선뜻 카드를 잘도 내밀면서 칠천원짜리 키티 거울앞에서 고민에 빠지다니.

 

 

1. 시세에 맞지 않음. 보통 저 크기의 손거울은 4천원 선임.

2. 빨간 리본과 분홍 리본 두 가지가 다 있는데 둘다 너무 예쁨.

3. 인터넷이 훨씬 저렴한데 색깔이 랜덤으로 온다는 단점이 있고, 난 당장 키티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고 싶음.

 

 

키티 코너에 우두커니 서있는 나를 친구가 찾아냈다. '역시 여기 있었고만!' 나의 이런저런 고민을 설명하며 합리화를 시작했다. 그래 키티는 예쁘니까 좀 비싸도 괜찮잖아. 그리고 키티하면 빨강이지. 인터넷은 택배비가 더 많이 들지 않을까? 오호호호호. 친구가 점원을 불렀고 점원이 도난방지용 택을 제거해줬다. 자, 계산대로 가라!

 

 

나중에 엄마에게 키티 거울을 꺼내보이며, 이거 기억하느냐고 했더니 너 이걸 아직도 갖고 있냐고 했다. 역시 엄마도 이 거울 아직 기억하는구만. 너무 예뻐서 다시 샀다고 하니, 키티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느냐고 예쁘긴 예쁘단다. 그치만 애처럼 그런걸 아직도 좋아하느냐는 말도 들었다. 하긴 그런 심각한 고민은 샤넬백 앞에서나 해야되는건데. 아무튼 지금은 키티 거울을 꺼낼때마다 행복하다 완전!

 

 

엄마가 다음달에 일본을 간댔다. 키티 거울이 있으면 분홍색을 사다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는데 아마 엄마는 쿨하니까 안 사오고 카라멜이나 한 개 던져주겠지. 이거나 먹어!

 

 

* 키티 거울을 사고 만족감에 부풀어 또 다른 예쁜 거울이 없나~ 다른 매장을 기웃거리는데 깜티를 발견했다. 까만 키티라서 내 맘대로 깜티. 가격이 정확히 키티의 1/2이었다. 역시 예쁜이는 예쁜 값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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