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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버둥거려요 : 남자들은 한번도 안해본 그것!

대부분의 원피스는 등줄기를 찢는 디자인이다. 누에가 고치를 찢고 나오는 것처럼 어딘가를 찢어야하는데 그게 앞이면 당연히 흉하니 되도록 뒤에 갖다 붙이는 것이다. 아침마다 여성들이 원피스를 입을 때 어떤 난리를 치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팔을 뒤로 접어 등의 1/2지점까지 갖다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등에 달린 지퍼를 올릴 수 있다. 다년간 수도 없는 반복으로 팔 근육만큼은 요가선생만큼 발달했달까나.

 

 

그래도 팔이 좀 짧다거나 뻣뻣하다거나 하는 여성들은, 어쨌든 뷰티를 포기할 순 없고 원피스를 입긴 입어야겠으므로 옷에 몸을 넣은 상태에서 몸을 최대한 둥글게 말아 옷과 등의 최대치 공간을 확보한 뒤, 옷을 최대한 위까지 끌어올려 지퍼가 팔과 만날 수 있게 돕는다. 이걸 뭐 사진으로 보여주면 한방에 설명될텐데 보여줄 수도 없고. 아무튼 나도 원피스를 좋아해서 옷의 대부분이 원피스 뿐인데, 아침마다 팔을 뒤로 꺾어가며 지퍼를 찾고 있으면 진이 쪽 빠진다. 이 옷은 유명 디자이너옷도 아니니까 죄다 남자들-유명 디자이너는 왜 죄다 남자일까요-이 여자의 심정도 모르면서 만든 옷도 아닐텐데, 어쩌다보니 지퍼는 뒤에 다 달려있고 그래서 여자들은 아침마다 요가를 해대고 있다.

 

 

누구한테 나의 뒤를 봐달라고 하는건 굉장히 은밀하고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 같다. 이건 태생부터 뒷모습을 누군가에게 의탁할 수 밖에 없는 여자들만이 아는 묘한 뉘앙스이기도 하고. 대부분의 여자아이는 자라날때 엄마가 머리를 매만져준다. 나도 그랬다. 미술에 재능이 많았던 엄마는 매일 아침 내 머리에 꽃을 피웠다. 정작 나는 그걸 볼수가 없었지만. 아무튼 함부로 아무나에게 등의 지퍼를 올려달라거나 목걸이를 좀 해달라며 목덜미를 스윽 내맡기지는 못한다. 쑥쓰러워서 엄마와도 목욕탕을 안가는 나는 더 그런것 같기도 하고.

 

 

벌써 몇년도 전에 남자친구와 어떤 영화를 보는데, 어떤 여자가 그의 남편과 바람난 여자를 찾아가는 장면이었다. 바람난 여자는 몸에 착 붙는 섹시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역시 찢고 나오는 부위는 등. 그 여자는 팔이 짧았는지 뻣뻣했는지 옷과 등 사이의 공간 확보가 안됐는지-말라서 그럴일은 없었겠지만-등 지퍼를 끝까지 못 올리고 거울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남자친구에게

"이제 저 여자가 슬며시 저 지퍼를 올려줄꺼야. 그게 무슨 의민지 알아? 내가 너보다 위라는 의미야. 넌 나한테 안된다는 의미."

 

살면서 한번도 원피스를 안 입어봤을, 아 한번은 입은걸 본적이 있다. 여장 때문에. 어쨌든 등 지퍼는 제 손으로 안 올려봤을 남자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곧 그 여자는 바람난 여자의 지퍼를 살갑게 올려주면서 몇 마디를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장면은 압도하는 뭔가가 분명히 있었다.

 

 

굳이 풀이하자면 너는 내 남자와 바람이 났지만, 난 널 가만두지 않는대신 오히려 너의 뒷모습을 돌보아 줄 정도로 아량이 넓은 여자야. 그러니 넌 나한테 아무리 기어올라도 안 돼. 여자들은 뒷모습을 누군가에게 함부로 의탁하지 않는다.

 

 

생애의 어느 일정부분을 알록달록한 머리끈과 핀으로 채웠던 시절을 제외하고, 내가 누군가에게 뒷모습을 최초로 내어준건 아마 열세네살쯤 되었을 때다. 성당에서 다같이 산으로 캠핑을 갔는데 시력이 썩 나빴던 나는 머리를 감고 돌아오는 길에 텐트줄에 걸려 넘어져버렸고 얼굴과 무릎을 다쳤다. 서러워서 훌쩍훌쩍 우는데, 내가 우는걸 보고 동갑내기 머슴애가 다가와서 내 긴 머리를 수건으로 툭툭 말려주었다. 말려주면서 기집애가 칠칠맞다고. 많이 다쳤냐고 물어보는데 뭐가 서러웠는지 더 많이 울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내 뒷모습을 돌보던 그때의 기분은 아직도 참 묘하고 또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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