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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등장인물

 

 

 

 

 

모든 것에 자신만만하던 사람이 어떤 실패를 맞닥뜨리면 과도하게 움츠러드는 것처럼, 삶 대부분의 국면에서 몹시 옹그리던 이가 어떤 계기로 허리를 한번 곧추세우게 되면 모든 것에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경우를 종종 목도한다. 그러다 허리가 뒤로 꺾어질 만큼.

 

 

나른한 오후. 침대 위에서 뭉개는 토요일. 그리 반갑지 않은 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늘 이렇게 번득번득 사람을 덥석 찾는지. 그리 반갑지도, 가깝지도 않은 사이인데 대뜸 '어디냐' 는 메세지 한 통. 일 때문에 작년에 두어번 만난적이 다다. 내가 이 사람과 약속이 있었나? 그럴리가. '집인데요' 라고 답장을 보냈더니 이번엔 '집이 어디냐' 는 또 물음. 홍대 근처인데 컨디션이 좋지 않아 나가기 어렵다는 메세지를 보냈더니 팥빙수 사줄테니 나오란다. 컨디션이 별로라고 집에서 쉬겠다하니 '집 더울텐데 그만 나오지?' 이봐요. 당신 나랑 친해요?

 

 

누워서 오랜만에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휘리릭 넘기는데 연락온 그 사람이 한시간 여 전에 써놓은 글이 보인다. 홍대에서 번개 할 사람. 내 집 어딘줄 뻔히 알면서 왜 물었을까. 만날 사람 없으니 여기까지 나온건 아깝고 누구라도 봐야겠고 생각난게 나였고. 차라리 홍대 근처에 왔는데 심심해서 네 생각이 났다는게 담백하지 않나. 이 사람의 의사소통방식은 왜 늘 이 모양일까. 지나치게 자신에게 너그럽다. 꼭 그만큼 받아들이는 나는 함부로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고. 지나간 과거의 일은 구구절절 말하지 않겠지만, 이상하다. 이 사람. 사람 자체는 어떨지 몰라도 의사소통 방식에서 과히 이상하다.

 

 

*

 

 

친구들이 동생이나 오빠,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하면 나는 물끄러미 이야기를 들으면서 속으로 딴 생각을 한다. '진짜 존재하는 인물일까?'

 

 

친구들이 거짓을 말한다는게 아니라 아주 어릴때부터 늘 이런 생각을 했다. 친구들이 말하는 누군가가 앞으로도 내가 한번 마주할 일 없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나 소설 속의 주인공이나 받아들이는 나의 입장에서는 다를게 뭐겠나. 만나지 못한 허구의 인물인데. 인물뿐 아니라 이 세상에 대해서도 그런 생각을 늘 품고 지냈다. 미국이라든가 프랑스라든가 아프리카라든가 정말로 있는 나라일까. 나도 참 우습지. 누군가의 마음이나 저 하늘의 별자리 같은 것은 꼭 붙들고 순식간에 믿어버리면서도.

 

 

*

 

 

오늘은 처음으로 오롯이 집에서 하루를 다 보냈다. 망고 아이스크림을 사고 싶어서 큰 용기를 쥐어짜내 - 편의점이 내리막 끝에 있다. 내리막 끝에 있다는 말은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러 다시 오르막을 기어이 올라야 한다는 말이다 - 몸을 일으켜 편의점에 다녀왔다. 저녁이 어뚝어뚝 내리는데 뭐랄까. 이 동네의 처음 보는 저녁 얼굴이니까, 늘 출근 무렵의 환한 얼굴만 보다가 낯선 이 곳의 저녁에 이제야 인사를 하는 느낌이 묘했다. 저 멀리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가서 짐을 부린 후 슬리퍼를 끌고 다시 바깥으로 기어나오는 첫 날의 느낌과 꽤 닮았다. 풍경은 설고 아는 이는 하나 없고 하늘은 하늘대로 예쁘고 공기 냄새도 좋고. 내리막 끝까지 겨우 내려갔더니 편의점 담벼락에 남녀가 붙어서서 싸우고 있었다. 여자가 나를 흘긋 보는게 느껴진다. 망고 망고 망고 아이스크림. 요즘 GS에만 파는 망고 아이스크림에 영혼과 재산을 헌납하는 중인데, 열렬한 신봉자가 많은지 아이스크림이 똑 떨어져버렸다. 으앙. 이 동네에 GS는 여기 하나 밖에 없는데. 빈 손인 것도 슬픈데 오르막까지 올라야한다. 슬픈 얼굴로 편의점을 나왔더니 여자가 다시금 나를 흘긋 보는게 느껴진다. 열심히 싸우세요~

 

 

아쉬운대로 조그마한 가게에 들어가서 음료와 생수를 샀다. 내일은 시장에 가서 장도 좀 보고, 이것저것 하고 싶다. 뭘 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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