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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방의 기분

 

△ 그렇게 예쁜 방에 살면 어떤 기분이야?

 

 

 

지난 토요일에 방을 좀 치우다가, 어제는 새벽부터 일어나서 - 커텐이 아직 없어서 아침마다 누가 햇살 몇 양동이를 창문으로 퍼붓는 기분. 일어나라! 철푸덕. 으악 - 방을 치웠다. 새로운 공간을 나의 구미에 맞게 이래저래 채워나가는 작업은 늘 나에게는 좀 많이 어려운 일이다. 어릴때부터 나의 작은 방에 너무나 많은 것을 채워넣어야했기 때문에, 테트리스처럼 무엇과 무엇의 틈을 기가막히게 찾아내거나 지어내고 그 틈에 무언가를 박아넣는 일에는 도가 텄지만, 그래도 여전히 새로운 공간을 통째로 부여받는 일은 좀 버거운 것 같은 기분. 오히려 빽빽한 공간에 무언가를 잔뜩 집어넣으라면 잘 해낼 자신이 있다.

 

 

옷 넣는 장의 칸칸마다 옷들을 차곡차곡 개어 넣었다. 한 칸은 치마, 한 칸은 원피스, 한 칸은 티셔츠, 아끼는 블라우스나 원피스는 옷걸이에 걸어 두었다. 빙글빙글한 색깔들을 옷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얼마전까지 이 방의 주인이었던 남자는 어떤 것들을 어떤 칸에 넣었을까 궁금해진다. 가끔씩 친구들이 내 방에 놀러오면, 특히 남자아이들이 내 옷걸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왜?' '옷 색깔이 너무 알록달록해서. 난 늘 비슷한 색만 입거든. '

 

 

방은 지금 이런 기분 아닐까? 몇년간 줄곧 청바지에 폴로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 옷을 홀딱 벗기고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히고 향수를 칙칙 뿌려대는 꼴이랄까. 한마디 상의도, 예고도 없이 말이다. 오전엔 방바닥에 처참하게 널린 옷가지들만 겨우겨우 수습을 했다. 오후 두시께 오기로 한 친구가 오지 않아서 전화를 넣었더니 자고 있었다. 짜식. 많이 피곤했나보네. 직장인의 소중한 주말 낮잠을 앗은 것 같아 미안하다. 30분쯤 지났을까. 집을 찾기가 꽤 어려운데도 한번에 척 찾아와서 벨까지 띠리링 누르는 친구녀석이 남자친구를 같이 데리고 왔다. 쿨 가이. 선풍기를 하나 선물받았다며 쿨가이를 나에게 소개했다. 이제 우리 같이 사는거예요. 쿨가이씨. 친구가 사은품으로 받았다던 광파오븐은 2만원에 낙찰받았으며, 오븐뿐 아니라 3단 트레이나 자그마한 밥그릇, 텀블러 같은 것이 주렁주렁 매달려온다. 2만원만 내면 광파오븐도 주고 선풍기도 주고 3단 트레이도 주고 밥그릇도 드려요. 

 

 

친구와 짐을 부려놓고 밖으로 나가 요기를 한 후, 다이소로 가서 필요한 물건들을 한아름안고 왔다. 화이트 보드에는 자석들을 다다닥 붙여놓고, 화장실 거울에도 큐방달린 고리를 잔뜩 붙여놓고 바구니를 서랍에 넣어놓고... 방의 기분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쪽이었으면 좋겠다. 총각이랑 2년 살아봤으니, 이젠 처자랑 2년 살자꾸나. 내가 잘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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