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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달인 <나일강 편>

 

△ 옆자리 짝꿍이 아침에 '선물 줄까요' 하며 시집에서 곱게 꺼내준 네잎 크로버.

'네잎 크로버를 찾으셨군요! 오늘은 즐거운 날, 행운이 가득한 날!' 껌한통 더!

 

 

 

(이 회사에 입사하고는) 오늘 첫 취재를 다녀왔다. 사진찍는 종호씨를 데리고, 베엠베 미니를 타고 - 대표님이 '어느 회사에서 취재나갈 때 외제끌고 나가디! 그런데 봤어? 봤어?' 대표님, 못 봤어요. 언제나 애정과 존경의 하트를 뿅뿅 -.

 

 

내가 준비하는 특집에 대해서는 아직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종로구의 여러 동네들을 가서 무턱대고 누군가를 잡아 이야기를 꺼내야만 하는 과정. 오늘 만난 인연들이 유독 특이하고 기이해 기억에 남아 몇 자 남긴다.

 

 

1. 취미사 : 원래의 옆에 자리한 표구집에 들어갔다. 이러저러해서 동네에 관한 이야기를 좀 듣고싶다 청했더니, 당신보다는 옆가게인 <취미사>가 동네에서 오래되었다는거다. 취미사를 지날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늘 웃음이 나던 곳이기도 하다. 취미사? 뭘 하는 곳일까. 오늘은 명분도 있겠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갔다. 주인이 누군가와 작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낮고도 자욱하게 무언가를 이야기 중이었는데, 주인을 쳐다보며 눈인사를 하자 아무 말없이 손짓으로 거기에 앉으라는 신호를 보낸다. 노련하고 재빠른 눈과 손.

 

낡은 소파에 종호씨와 빼뚜룸하게 앉아 멀뚱거리며 두 사람을 바라보는데, 손님 왈 '...마지막으로 저희 딸이 대학에 갈 수 있는지...' '일시가 어떻게 되오?' 아 여기 사주보는데네. 사주를 취미로 보시는건가. 종호씨에게 '종호씨. 여기 사주보는데다' 귀엣말을 하고는 살짝 빠져 나왔다.

 

 

2. 분식집 : 한 곳에서 25년을 하셨다는 아줌마.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말에 '아유 나를 뭘...' 라면을 끓이고 손님을 맞으면서도 들릴락말락한 목소리로 뭔가를 줄곧 쏟아내신다. 여기 그러니까 서수남이도 와서 인터뷰를 하고... 나를 다 찍어가고... 거기...현대 자동차에 높은 분도 자주오시고... 내가 나이가 올해 칠십 둘인데...그 중 인상적인 대답 하나. '동네를 색깔로 치면 어떤 색일꺼 같으세요?' '붉은색' '왜요?' '여기는 지금 건물들이 다 들어와서 하나같이 붉은색이야...'

 

 

3. 정수 : 꼬맹이들의 시선으로 인터뷰를 담고 싶었다. 마침 분식집 근처의 <정수학원>으로 들어가는 남자아이 발견. '안녕! 누나가 인터뷰를 좀 하고 싶은데요~' 인터뷰란 말에 볼에 부끄러운 색을 띄면서도 마냥 싫진 않은 모양. 하긴 누군가가 내 삶을 궁금해하고 들여다봐준다는건 부끄럽지만 기분좋은 일이니까. <정수학원>의 1층 계단에서 인터뷰를 시작할까 하다가 문득 학원시간 늦지 않았나 걱정이다. '어 근데 학원 시간 괜찮아?' 화들짝. '지금 몇시예요?' '지금 두시 사십분' 앗 늦었어요!! 후다다닥. 안녕 귀염둥아. 정수학원에서 뭘 가르치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생의 정수 하나는 보너스로 가르쳐줬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여자들은 가끔 내미는 꽃 한송이에 온 마음이 녹아내린다는 것.

 

 

4. 나일강 : 올라오는 길에 문방구 앞의 모여있는 아이들을 스쳤던 기억이 나서 다시 아래로. 마침 한 무리의 아이들이 와르르 쏟아져나온다. '저~ 누나 인터뷰 하고 싶은데요' 라고 말을 꺼내자마자 사내아이들이 우르르 모여들어 뺑 둘러싼다. 이게 바로 일진한테 삥 뜯기는 기분이겠지. 곁의 종호씨와 나를 보며 사겨요? 바람펴요? 누나 몇살이예요? 근데 누나가 아니라 아줌마 아니예요? 뭐하는 인터뷰예요? 피끓는 사내아이들 일고여덟에게 둘러싸여 혼을 뺏기고 있으려니 정신이 아득해온다. 곁의 종호씨를 흘끗 봤더니 날더러 '아줌마'고 했던 아이와 '좋았어!' 라며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었다. 너 임마 종호씨.

 

 

안 돼. 인터뷰 해야 돼. '여기서 이화동 사는 친구가 누구예요?' 라고 유치원 선생님마냥 큰 소리로 물으니 아이들이 누군가를 가리키며 '나일강이요!' 란다. 응? 나일강? '나일강이 여기 살아요?' 라고 다시 물으니, 저기서 누군가가 손을 들며 나가온다. 게임 아이디인건가? 혹시나해서 '일강아!' 라고 불렀더니 포르르 뛰어오는 나일강. 내게 가까이 다가오자마자 얼른 가슴팍 이름표부터 헤집어 보았다. 대자연의 젖줄, 나일강을 여기서 만날 줄이야.

 

 

△ 일강이에게 이름이 예쁘다고 말하자...
'내가 더 예뻐요!!' 라며 곁의 누군가가 질세라 보여준 이름표에는

김여유

 

 

이름만큼이나 일강이는 또래에 비해서 굉장히 어른스럽고 결이 고운 친구였다. 대자연을 품고있는 느낌이었달까. 낙산공원을 좋아하는데, 그 곳의 계단 문양이 나뭇잎에서 물고기로 바뀌었다고 했다. 이 인터뷰는 일고여덟의 공격을 쳐내느라 일강이의 목소리는 하나도 들을 수 없었고, 일강이에게 무엇 하나 묻거나 대답할라치면 아이들의 목소리가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메워버렸기 때문에 아쉽다. 이 놈의 시키들아! 누군가가 일강이 누나 이야기를 꺼내서 '누나 이름은 뭐니' 기대에 차 물었더니 역시 기대 게이지를 꽉 채워주는 대답이 돌아온다. 누나는 나일락. 마침 취재 잘하고 있느냐는 짝꿍의 메신저 알림. 대답대신 '나일강' 한 장을 보냈더니 그녀는 웃다 못해 울어버렸다.

 

 

5. 할머니 : 명륜동 일대에서는 이리저리 까이다가 골목을 성성 걸어가는 새하얀 머리의 할머니 한 분을 발견. 냅다 쫓아가서 '할머니, 저 인터뷰 좀 하고 싶은데요' 라고 길가에서 붙잡았다. 다행히 할머니가 기분좋게 허락해주셔서 인터뷰 진행. 다른 모든 것은 기억이 안나고 '동네는 푸른색, 푸른색이 예뻐요' 하는 한 마디와 '혼자 살아요' 라는 말이 남네. 할머니 왜 혼자사시느냐고는 차마 묻지 못했다. 마음이 이미 아파서. 긁적.

 

 

6. 생활의 달인 : 삼청동 주민들을 발견할 수 있을까? 숱하게 밟아본 정독도서관 길을 따라서 걷다가 문득 '아! 이동네 떡꼬치 진짜 맛있는데!' 퍼뜩 떠올리니 종호씨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 여자는 하루종일 먹는구나' 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다. 온갖 까페와 옷가게가 즐비한 이 곳에서 사람을 어떻게 찾을까나. 깊이 깊이 들어가보자. 골목골목을 파고 들어가다 인터뷰 요청은 또 까이고, 더 안쪽으로 파고파고 들어가서 동네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종호씨 이렇게. 이렇게는 어때요. 땀이 줄줄.

 

 

 

△ 종호씨 땀샤워

 

 

 

몇 시간을 꼬박 돌아다녔더니 지친다. 이 동네는 포기할까. 이름모를 주황색 꽃들이 주렁주렁 피어있는 담벼락에 붙어 사진이나 몇 장 찍고 있는데 한 분이 지나간다. 잡자. '안녕하세요! 저희가 인터뷰를 좀 진행하고 싶은데요....어쩌구 저쩌구' '아 나 티비에도 많이 나온 사람인데... 더이상 티비에 나오면 안되는데' '저희 잡지예요. 티비랑 아무 상관없어요!' '아이고. 내가 지금 어디를 좀 가야되서 바쁜데' '십분. 십분이면 진짜 끝나요. 빨리 뺄게요' '...알겠어요. 해보지 뭐' 바쁘다던 아주머니는 사진 몇 컷을 찍겠다는 말에 '립스틱 다시 바를까?' 라면서 나에게 물어본다. '꽃이 이뻐서 괜찮아요. 꽃 아래 서세요. 찍으면서 인터뷰 갈게요. 종호씨 찍어찍어'

 

 

아주머니 입담이 예술이다. 배를 잡고 깔깔 웃다가 '이 동네는 색깔로 치면 어떤 색일까요?' 라는 말에 '음. 붉은색은 너무 쨍해서 어울리지 않고, 절기마다 색이 다른데 지금은 들뜬 절기잖아. 그러니까 노랑' 어머. 이 아주머니 내 질문을 이해하시네. 반가운 마음에 아주머니 팔을 살짝 어루만졌다. 유쾌한 인터뷰가 끝나고 아주머니가 가면서 하는 말. '나 생활의 달인이야' '네? 어떤 편이요?' '미용실' 아~ 어쩐지 봉긋 솟아오른 머리가 예사롭지 않더라니.

 

 

야근할꺼면 떡볶이를 시키겠다는 짝꿍의 전화에, '나 이번에는 생활의 달인을 만났어요' 했더니 수화기 너머에서 웃겨 쓰러진다. 아 지현씨. 그건 정말 능력이예요. 인터뷰가 끝나고 내가 말했던 떡꼬치 집으로 가서 떡꼬치 하나씩을 뜯었다. 아. 물론, 그제였나 서울시와의 환승 대전에서 먹었던 그 떡꼬치다.

 

 

* 현진씨 고마워요. 오늘 받은 네잎클로버 빨이었나봐. 진짜 좋은 사람들 잔뜩 만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