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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기억되는 인연들

 

△ 날들은 어찌됐건 흘러요. 아름답게 보내는건 각자의 몫이겠지요.

 

 

 

음악 파일 하나를 찾을 것이 있어 핸드폰을 뒤적이는데, 녹음 파일 하나를 찾아내곤 가만히 듣고 있었습니다. 그래요. 전 아직 이별 극복 중이고 지금은 자정을 넘긴 11월의 차가운 밤이라 감성 팔이하기에 딱 좋고요. 30초가 채 안되는 짧은 기타연주곡인데 무릎을 세워 동그마니 끌어안고는 얼굴을 기대고 연거푸 스무번을 반복해서 듣고 있었어요. 날짜는 7월 17일. 기타연주는 7월 여름의 기분좋은 공기처럼 밝고 따뜻했습니다. 지난 7월에 누군가는 나를 생각하며 기타 연주를 했겠지요. 그 때의 나는 무척이나 감동받아서 오늘처럼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들었었고요. 그 때 우리의 사랑은 밝은 기타선율처럼 따듯하고 아름다웠다 믿습니다.

 

그러고보면 음악으로 기억되는 인연들이 몇 있어요.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 대학 1학년 2학기, 한 눈에 사랑에 빠져서는 3년간 짝사랑을 했었거든요. 나이 차이가 꽤 있어서 '아저씨'라고 불렀었는데, 사귄 것도 사귀지 않은 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관계였지만, 어쨌든 아저씨에게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를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으로 해두었습니다. 열아홉 꼬맹이가 바흐나 들었겠어요. 핸드폰을 뒤져서는 그 중에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곡으로 해둔거예요. 바흐의 곡이라는 것도 한참이나 지나서 알았고요. 

 

'앞으로 내 남은 모든 사랑을 그러모아도 아저씨를 향했던 사랑에는 모자라리라' 

어린 마음에 아주 깊고도 길게 사랑했던 아저씨가 기억에서 가물가물해 갈 즈음, 우연히 바흐의 그 음악을 듣고는 그 자리에서 심장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숨이 턱 멎고 눈물이 금새 터져나올 정도로 마음이 아팠어요. 그 뒤로도 종종 그 음악을 들을 때마다 너무 괴롭고 아파서 얼른 그 자리를 떠나야했습니다. 지금은, 이제야 첼로 선율에 귀를 기울이며 깊게 들어요. 가끔 아저씨가 생각날 때, 아니. 정확히는 누군가를 그토록 많이 좋아할 수 있었던 그 때의 내가 그리울 때 종종 찾아 듣습니다. 핸드폰으로 묵직한 첼로 선율이 울리기 시작되면, 미친듯이 쿵쿵쿵 울리던 내 심장소리.

 

 

두번째 곡은 이승열의 <기다림>. 기타를 곧잘 치는 친구였어요. 그 아이의 기타를 듣는 것을 좋아했는데 '미칠 것 같아...' 라고 나즈막히 <기다림>을 가끔 불러줬던 적이 있어요. 내가 청해서 듣기도 하고요. 오죽하면 올 봄에 혼자 이승열의 콘서트에 가서 <기다림>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까요. 어쩌면 이 노래가 그 아이의 주제곡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해요. 늘 나를 기다려줬거든요. 내 시간을, 내 손길을, 내 마음을. 그 친구에게 결국 아무 것도 건네지 못한 나는 시간이 오래 흘러도 늘 미안한 마음뿐이예요.

 

 

음. 세번째 곡은 리쌍의 <부서진 동네>. 대학 휴학과 졸업즈음에 사귀었던 친구 덕분에 알게된 노래예요. 제가 줄곧 좋아하던 샌님 스타일의 동글동글한 남자들과는 달리 굉장히 섹시한 느낌의 남자였는데, 리쌍을 참 많이 좋아했거든요. 리쌍의 유래부터 시작해서 나랑 만나서 줄곧 리쌍 노래를 들려줬어요. 그러다보니 중얼중얼 따라했는데 '랩에 소질있다'며 꿀칭찬을 해주는 바람에 그때부터 노래방에서 랩을 하기 시작했다는 전설이. 그 전에는 랩에 아무 관심도 없었는데 그 뒤로 랩도 좋아하고 찾아듣게 된 것 같아요. 역시 시간이 많이 지났고, 아마 누군가의 다정한 남편이 되었을 확률이 크지만 이 사람과 결혼했으면 참 좋았을꺼 같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 땐 내가 너무 어렸거든요. 나이도, 생각하는 법도.

 

 

그리고 마지막 곡은, 오늘 줄곧 들었던 기타선율. 에릭 클랩튼의 아, 아닌가. 아무리 찾아도 없네요. 무슨 곡이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마지막 곡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차세정씨의 어떤 노래가 어떤 이와 함께 떠오르네요. 키네틱 플로우도 함께.) 얼마전 끄적였던 글에서 '길가에서 만나면 한 대 패주고 싶다' 라고 썼는데, 사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떤 표정이든 들키기 전에 그 자리를 떠야겠지만요. 시간이 한참 더 지나서 당신에 대한 미움이 모두 걷히고 나면, 그저 따뜻하고 밝은 기타선율로 기억될 때가 언젠간 오겠죠?

 

 

내 귓가에서, 가슴 속에서 아름다운 음악으로 기억되는 인연들. 문득 나는 어떤 누군가에게 무엇으로 기억될런지가 궁금하네요. '빵 좋아하던 애' 로 기억되고 있으면 좀 곤란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