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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좋아하는 일 ; 개미와 베짱이

 

△ 원래 올리고 싶은 사진은 지금의 방 사진이다. 전기장판 위에 뭔가를 끄적인 포스트 잇이 꽤 많이 놓여져있는.

 

 

지난주에 꽤 공을 들여서 이력서를 체출했는데 떨어졌다. 속상하기 보다는 시원한 마음이 크지만- 우습게도 정말로 일주일 내내 '붙으면 어떡하지?' 에 대한 시나리오를 역시 공을 들여서 짜고 있었다- 역시 아직까지 나란 사람이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 에 대한 목마름과 미련이 여전한 이라는걸 알겠어서 한편으론 다행이고, 한편으론 어쩌나 싶다. (비겁하지만 미래의 남편이 하고 싶은 일은 다름 아닌 '돈 버는 일' 이기를 우스개로 빌어본다. 진짜 그럼 매력없긴 할텐데.)

 

어제 잠깐 안무가들의 공연을 보았다. 독백이 인상적이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하는 나는 개미일까? 베짱이일까?" "열심히 일하는 개미들을 위해 일하는 나는 과연 베짱일까,또 다른 개미일까." 인상적인 말들이 많았는데, 다 기억할 수 없어 무척이나 아쉽다. 그렇지만 이 아쉬움 덕분에 그 공연을 틈나는대로 자꾸만 기억 속에서 더듬거리게 될테다.

 

'붙으면 어떡하지' 회사에 떨어지고 보니 (다행이다 싶은 것이) , 나는 여전히 좋아하는 일에서 맘도 발도 못 떼겠구나 싶다. 아직까지는. 여태까지의 내 삶에 대해서 곰곰 돌이켜 보면, 삶에 대해서 정열가도 비겁맨도 아닌, 뭐라고 하기에 애매한 입장과 태도를 늘 고수해왔다. '이건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야!' 라고 유난을 떨며 스스로를 자주 몰아세웠지만, 막상 돌이켜보면 그리 하고 싶었던 일은 없는게다. '왜 너는 다른 젊은이들처럼 열정적이지가 않니?' 캐묻고 물어도 나의 열정은 쥐어짠다고 나오는 케찹통이 아니기에. 쩜쩜 그리고 쩝쩝. 타고난 특유의 게으름과 삶에 대해 심드렁한 시선이 여기서 들킨다.

 

굳이 머리를 쓴 건 아니었지만, 내 스스로에게 최소한의 방어기제라고 만들어 둔 게 '그나마 덜 싫은 일' 이라는 타이틀이 아닐까. 너무너무 하고 싶던 일을 차치하니,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었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두 발 다 담그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한 발은 빼지 않고 질질 끄는' 나름의 커리어와 시간을 쌓았다. 대기업 산하의 카피라이터로 인턴을 시작했고 (정작 중국어를 할 줄 안다는 이유로 중국업무에 더 많은 힘을 뺀 것 같기는 하다), 나와 전혀 성향이 맞지 않는 잡지사 두 곳에서 정말로 지옥같은 시간을 버텼고, 지금의 출판사에서 2년을 넘겨 근무 중이고 곧 퇴사 예정.

 

전혀 다른 일, 몸과 감각을 쓰는 일을 해보고 싶기도 하고 여전히 그 일들의 언저리에서 글줄을 끄적거리고 싶기도 하다.

 

올해 서른 한살 먹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어느 누군가는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꿈을 위해 미국으로 가겠노라 했다.

"어떻게 그래요?" 현실에 제대로 안착하지도 못한 어설프고 어정쩡한 현실주의자의 목소리를 담아 물었더니 "꿈이었어요." 라는 대답.

 

나는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배짱이를 부러워하는 게으른 개미일까. 어쨌든 열심한 개미를 부러워하는 게으른 배짱이일까. 이까지 쓰고 보니 개미도 베짱이도 아닌 '개짱이' 같다. 개짱이 인생.

 

 

(*) 가슴이 묵직해온다. 물리적인 무게 때문이면 오죽 좋으련만, 내일 아침 회의 때문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