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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2014년 10월 1일 : 백일 기도하는 마음으로

 

△ 이것도 저것도 당신의 선물

 

 

(바닥에 자기 때문에) 이제는 요를 두텁게 깔지 않으면 밤새 오들오들 떨게되는 겨울의 예고편. '추운건 싫다!' 라고 추위를 인지하며 살아온 시절 내내 부르짖고 있지만, 싫어도 맞닥들여야(만)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좀 더 공손하게 맞이하는 법을 배우게 되지요. 나이를 먹으면서요. 겨울의 추위만큼이나 싫어하지만 '오셨군요' 하며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익숙한 것처럼 으레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 나에게는 바로 '작별' 입니다.

 

어젯밤에 꿈을 꿨어요. 꿈에서도 한숨을 훅 하고 들이마시면서 좀 계면쩍은 얼굴로 어머니에게 '사실 서울 생활 좀 힘들어. 너무 춥고. 아...그리고 이건 별거 아닌데 회사 그만두게 됐어요. 하하하(긁적긁적)!' 어쩌면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싶고, 위로를 받고 싶었던 내 마음이 꿈에서나마 빛을 발한(?) 건지 어쩐건지. 깨고나서 좀 싸한 마음이 들더군요. 싸늘한 10월 아침의 공기를 느끼며 이불에 비비적대고 누워있었습니다. 

 

어제는 신촌에서 술을 마셨습니다. 회사의 두 유부남의 오기와 치기때문에 어찌어찌 신촌까지 흘러들어가게 된 것인데, 창천교회라고 아실려나 어쩌려나. 거길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서울에 올라와 처음 맞았던 겨울과 또 그 이듬해 겨울과 처음 맞았던 겨울과 또 그 이듬해 겨울을 함께했던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첫 해 겨울 크리스마스에는 신촌 근처를 어슬렁 거렸던 것 같아요. 마침 눈이 왔었고, 그 애가 무척 행복해 했고, 나는 행복해하는 그 아이의 얼굴을 보며 남모를 커다란 죄책감을 느꼈지만, 겨울은 너무나 추웠기 때문에 장갑처럼 그 아이의 손을 꼭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 이듬해에는 이제 서울 좀 살아봤다고 어느 조용하고 아름다운 동네 까페에 가서 크리스마스를 보냈어요. 까페에 가서 맛없고 비싼 차를 마셨고, 그 애도 별로 행복해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랑한다' 라고 씌인 카드와 함께 선물을 받았는데, 그 겨울도 너무나 추웠지만 나는 그 순간 맨손으로 겨울을 버티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나는 이 아이가 원하는 사랑을 줄 수 없고, 이 아이에게 사랑이 그토록 갈망하지만 얻을 수 없는 것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 고통스럽지만 이 고통을 계속할 용의가 있다-라고 한다면 나는 더 이상은 안되겠구나. 나와 함께 있는 사계절내내 그 아이는 맨손이었으니 이제는 내가 맨손일 차례구나.

 

입사한지 2년 하고 3개월에 접어들었나요.제가. 그렇다면 2년 3개월동안 주말과 공휴일을 빼놓고 줄곧 함께 시간을 보냈던 친구가 퇴사를 했습니다. 친구라고 하기에는 저보다 나이가 열 살쯤 많지만, 선배라고 하기엔 너무 철부지이므로. 시시껄렁한 농담과 그 친구가 3년 6개월이라는 시간동안 숨겨왔던 역시 시시껄렁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문득 어느 순간에 살짝 눈물이 나려고 했던 적이 두 번 정도 있었는데, 저는 이제 어른이므로.

 

올 초에 입사한 남자 편집자는, 퇴사하는 선배를 붙들고 "내일도 나와라. 어떻게 이럴수있냐. 너 가면 어떡하냐." 길바닥에서 치고 박고 싸우고 머리를 때리고 어깨동무를 했다가 개새끼야 욕을 했다가 이러고 있고, 또 나를 붙들고 "반지님. 반지님. 반지님. 저 정말 멘붕이예요. 무너지는 것 같아요. 반지님까지 나가면 어떡해요." 했다가 음악을 들으러가자 했다가 음악 들으러가니 배고프다고 나가자 했다가 배고프다고 떡볶이와 피자를 시켜놓고는 주인이랑 싸움이 붙어서 일어나자고 소리를 질렀다가, 걱정하는 마음에 "내일 출근 늦지 마셔요. 찍혔어요." 라고 했더니 "저 찍혀도 상관없어요!" 라고 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신촌 창천교회 앞에서 두 남자는 치고박고 싸우고 소리를 지르고 있고, 나는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잠시 신촌에서 보낸 크리스마스의 감상에 빠졌다가 두 남자를 버리고 집으로 와버렸습니다. 싸늘한 공기에 지레 겁을 먹고 있는 것 같아요. 올 해 겨울은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면서.

 

아무튼 선배이자 나의 친구이자 오빠였던 당신. 앞길에 축복만이 가득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