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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2014년 4월 13일 : 일요일

 

 

'나 지금 술먹고 울고 있어.'

친구의 이런 메시지를 받으면 기분이 어떠신가요? 또 어떤 대답을 해주시나요?

(게다가 상습범이라면!)

 

여자들이 아무래도 감정 꺼내보이기 쉬운 족속이겠지만, 제 주변에 유독 자기의 아픔이나 상처 따위에 대한 공감을 구걸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남자친구와 헤어졌을 때도, 서류 탈락때에도, 직장 생활이 힘에 부칠때에도 징징거리며 자기를 알아달라고, 안아달라고 위로해달라고.

나는사실 이런 친구들이 얄밉죠. 무슨 자존심인지 나라는 사람은 이상하게 어릴때부터 '나 혼자서 해결해보겠다'라는 의지가 남달랐고, 아주 친한 친구는 물론 가족들한테도 나의 어려움이나 고민을 토로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으니까요.

 

대학가서 처음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졌을 때도 울음소리가 새어나갈까 방안에서 이불을 씹으며 누워서 울었고, 사흘 밤낮을 작성한 서류 탈락 때에도 방안에 틀어박혀서 종이 빼곡히 '불안하다, 불안하다, 불안하다' 라고 몇 시간을 끄적거리고 있었고, 정말 내 인생에 최고의 쓰레기이자 거지같은 쌍년 밑에서 일할때도 술을 많이 마시긴 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진상을 떤 적은 없었거든요.

 

'어떡해. 무슨 일이야.' 라고 물으면 기다렸다는 듯, 줄줄이 소세지처럼 딸려나올 그녀의 대답은 이미 예측가능하고요. 그렇다고 '다들 힘들어. 너만 그런거 아니잖아.' 라고 차갑게 뚝 잘라버리면 아마 우리의 10년 우정도 뚝 하고 나가떨어지겠지요.

 

전자와 후자를 적당히 버무려 그녀의 징징거림에 적당히 응수해주자니 역시 마지막엔 '시간 되면 만나자.'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하아. 겉보기엔 사람들을 잘 받아주고, 성격도 온순한 것 같으니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부정적인)정서와 (역시 부정적인) 고민들을 의탁합니다. 나는 내 것을 토해내지  않기에 오히려 꽉 차있어서 남들 것을 받아줄 수 없는데. 그래서 그 재밌다는 드라마도 안보고, 라디오도 안 듣는 건데. 이미 내 안에는 내 것이 가득한데 남들은 자꾸만 나한테 본인들을 받아달라고 징징거립니다.

 

내 친구가 참 유약하다 생각하면서 또 다른 여자 후배 녀석이 생각이 났습니다. 대구에서 서울까지 콘서트를 보러 올라 오는데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어 밥 먹을 사람을 인터넷 여기저기서 구하고 있대요. 처음엔 나한테 자꾸 매달리다가 내가 자꾸 거절하니, 인터넷 사이트에까지 올려서 같이 밥 먹을 사람을 찾는다나. 하. 그냥 밥 혼자 먹으면 안되나? 나 같으면 모르는 사람이랑 어색하게 마주보고 밥 먹느니 그냥 혼자 먹겠다. 혼자있는 걸 왜 못 견디는거지? 라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다가, 문득 내가 유독 혼자있는 걸 잘해서 남들이 이상하게 보이는건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보면 무서워서 혼자 못 잔다거나, 불을 켜고 잔다거나 이런 말은 사실 잘 이해가 되지 않고 - 전 빛도 안들어오는 깜깜한 방에서 혼자 자는 걸 되게 좋아하거든요 - 아침 열시부터 저녁 열시까지 콘서트 장에 혼자 머무르면서 김밥 여섯줄 챙겨가 끼니때마다 꼬박꼬박 챙겨먹고 앉아잇었고, 혼자 중국 전체를 다 돌아다녔다는 말에 사람들이 '와 무섭지 않았어요? 대단하다' 라는 대답이 돌아오면 '그게 왜 무서운거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거든요. 남자친구 있을 때도 좋아하는 공연은 혼자 보러다녔고, 혼자 가고 싶은데 여기저기 잘 돌아다녔고.

 

이 글을 적다보니 갑자기 작년 광화문 솔로대첩때가 생각이 나네요. 저 솔로지수 1등 먹어서 상품도 탔던 경험이... 아무튼 혼자 있는게 유독 편하고 익숙하니까 남들이 혼자 자기 감정 처리를 못 하거나, 혼자 있는 걸 못 견디는 모습을 보면 괴이하게까지 여겨지는 것 같아요. 그들이 보기에도 내가 참 이상하겠다 싶긴 하고.

 

아무튼 그 찡찡이 친구가 한 번 보자는 말에 적당히 둘러 '음 그래 시간 한 번 내볼게.' 라고는 말았는데 오늘, 그러니까 일요일 오후는 참 날씨도 좋고 바람도 살랑살랑하고 한강이나 나가볼까 하다가 집에 짱박혀서 울고 있을 그 애 생각이 나서 불러냈습니다. 역시 불러내기 무섭게 입에서 쏟아지는건 회사얘기, 회사 상사얘기, 자기를 미워하는 회사 동료얘기... (지난 겨울부터 시작된 회사 이야기는 아직도 그칠 줄을 모릅니다. 눈은 이미 그쳤는데! 이뇬아!) 눈 앞에서 꽃들은 바람에 마구 흩날리는데 이 친구는 이 경치를 즐길 생각은 하지 못하고 그저 누군가에게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그 사실에 신이 났네요. 미안하지만 머리가 좀 아파서 듣다가 "미안한데, 회사 얘기 좀 그만하자." 라고 말을 끊었습니다. 묘하게 1초 정도 정적이 흐르다가 내 말에 머쓱했는지 갑자기 화제를 급 바꿔 주제가 다른 문장 두어개를 얘기하다가 결국 다시 회사 얘기네요. 에휴. 그래 불러낸건 나니까. 사실 그 친구에게는 이런 시간이 필요한게 맞긴 하니까. 

 

원래는 저녁에 혼자 보려고 2, 3주 전에 예매해둔 공연도 있었는데, 공연장에 미리 말해서 친구 티켓도 다행히 하나 구했습니다. 옆에서 조용히 음악을 듣더니 "야야 너무 좋아"라고 활짝 웃는 얼굴을 보니 좋긴 하더라구요. 내 물건은 남자처럼 1초만에 사는데, 쇼핑도 잘 안하고 -그래서 여자 친구들이 쇼핑할 때 저를 안 데려가요. 너무 지겨워하니까 - 잘 따라가주지도 않는데, 새로 바꾼 핸드폰의 케이스를 사고 싶다는 말에 매장을 세 번이나 바꿔들러가며 폰 케이스를 이것저것 골라주었습니다.

 

지하철 역까지 바래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니 친구에게서 '오늘 너무 고마워.' 라는 메세지가 와있네요. 으음. 나 오늘 봉사했어. 나는 혼자 있는걸 편해하는 건 맞지만, 남들까지 혼자 있는 걸 편해하는 건 결코 아닐 수도 있으니 좋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도록 노력하자. 단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좀 더 좋은, 현명한 인간이 되어보기로.

 

 

(*) 한강 공원은 한 번 더 가야겠네요. 친구 회사 이야기때문에 풍경에 집중을 못하고 머리만 지끈거린건 사실.

 

 

 

△ 낮술을 먹으며 찾아보세, 인생의 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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