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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건드리는 구석

잘 발달된 도시일수록 생활의 섬세함을 간파한다. 대구에 살 때는 치킨을 시키면 포크가 딱 하나 나와서, 한 손에는 무조건 양념을 묻힐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서울에 오니 한 사람당 포크가 두 개씩 나와서 손에 양념을 묻히지 않고도 치킨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서울은 새벽 두시를 훌쩍 넘겨도 밤 늦게 잔을 기울이는 이들을 위해, 뒤늦게 이 도시에 당도한 누군가를 위해 버스가 다닌다. 내게 꼭 필요한 생활의 어느 부분이 섬세하게 건드려질 때, 우리는 든든해진다. 손에 양념을 묻히지 않을 수 있어서, 밤 열두시 넘게 술을 마실 수 있어서, 길을 걷다 들른 갤러리에 좋은 그림이 걸려있는데다 입장료도 무료여서, 거리의 악사들이 때로(그리고 자주)무대 위의 악사들만치 훌륭해서.

시골은 무뚝뚝하다. 때로 퉁명스럽다. 도시의 섬세함을 찾아볼 수 없다. 길을 아무리 걸어도 카페는 없고, 버스는 언제올지 알 수 없으며, 때론 주문한 메뉴와 다른 메뉴가 나와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생활의 어느 부분이 뭉뚱그려져 구겨진다. A부터 Z까지 나의 필요와 취향을 알아서 챙겨주던 도시에서 가꿔온 생활의 섬세함이 처참함으로 바뀐다.

그러나 그 처참하고 당혹스러움에서 살짝만 고개를 돌리면, 다른 종류의 섬세함을 만날 수 있다. 도시에서 만난 섬세함은 바깥에서 나를 건드린다면, 시골에서 만나는 섬세함은 안에서 피어올라 나를 건드린다. 툭툭 거칠게 뭉텅 썰어낸 음식들의 맛과 향, 고요한 거리의 공기, 들판에 쌓인 눈을 바라보는 시간을 장식하는 햇살을 비로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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