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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열심히

우리 가족 중 가장 뒤늦게, 그러니까 카톡이라는 것을 쓰기 시작한지 불과 반년이 채 되지 않은 - 내년 3월, 카카오톡은 출시 8주년을 앞두고 있다- 아버지의 카카오톡 알림말은 '오늘도 열심히'다. 프로필에는 카카오톡과 출생년도를 같이 하는 오래된 가족 사진이 줄곧 걸려있었다. 줄곧, 이라고 해봤자 채 몇 개월 되지 않지만. 가족사진과 '오늘도 열심히'라는 알림말은, 생을 마칠 때까지 가족을 위해 복무해야만 하는 가장의 무게를 슬그머니 대변하는 것 같아서 볼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태생이 일중독인 게자리의 성향도 톡톡히 한 몫 했겠지.

 

두어달 전, 추석을 겸해 고향집에 내려간 김에 아버지의 프로필을 독사진으로 바꿨다. 오늘 문득, 모니터를 들여다보다가 아버지의 '오늘도 열심히'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해마다 이맘때 쯤이면 이듬해의 다이어리를 사고 식구들과 친구들의 생일을 또박또박 써넣는 나만의 작은 의식을 치르는데, 이듬해 아버지의 생신이 환갑이었다. 우리 아빠에게도 환갑이 찾아오는구나. 

 

환갑 [還甲]  사람이 태어나서 60년 만에 맞는 생일날

 

아버지가 태어나고 60년을 살아가는 동안, 아버지 생의 절반은 내가 함께했다. 바꿔 말하면 아버지 생의 절반은 나를 먹여살리기 위해 노동했다는 뜻이다. 나에게 예쁜 것을 사주고, 맛있는 것을 먹이고, 학교를 보내고, 유학을 보내고, 여행을 시켜주기 위해서 아버지는 생의 절반을 노동했다는 뜻이다. 그런 아버지가 '오늘도 열심히'라고 말없이 말하는 것을 나는 그저 묵묵히 지켜볼 뿐. 다음에 집에 내려가면 '오늘도 열심히'에 두 줄을 박박 긋고 '오늘 즐겁게' 라고 써두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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