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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가능성의 안부

 

 

사박사박, 발끝에 닿는 낙엽소리가 귓가를 부드럽게 건드리는 계절입니다. 좋은 주말 보내셨나요? 저는 어제 남자친구와 영화 <토르>를 보고, 그가 어릴 때 살았던 동네를 탐방했어요. 북적북적 뭔가가 있는 동네가 아니라 조금 지루한 감은 있었지만, 반짝이는 눈동자로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물끄러미 응시하면서 '여기는 뭐가 있었고, 여기는 어땠어. 여기는 이렇게 변했네.' 하고 지나간 시간을 더듬거리는 그의 목소리가, 그 순간에 함께 머물러 있음이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의 발걸음이 처음 닿은 곳은 새파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시퍼런 건물 앞이었습니다. 스머프의 피부보다도 더 시퍼런 건물 한 채가 떡하고 서 있길래 '오! 저 건물 좀 봐!' 하고 말했더니 그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담했어요. '여기가 우리집이었어.'

 

우리는 시퍼런 건물의 맞은 편에 우두커니 서서, 1층 통유리 안으로 들여다보이는 카페를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새초록으로 차려입은 여자가 1층과 2층을 왔다갔다 하더군요. 그의 말에 의하면, 집주인의 딸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일곱살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거기 살았다고 했어요. 마당에는 개 한마리와 목련나무를 길렀다고 했습니다. 그와 만난지 얼마되지 않았던 날, 집으로 가는 골목에 서 있는, 꽃이 훌쩍 다 져버린 목련나무를 가리키며 '내가 좋아하는 나무에요' 라하고 말했더니 그가 단박에 '목련나무네요.' 하고 알아봐서 놀랐거든요. 나는 한 해를 훌쩍 보내고 이듬해 봄이 되어 허옇고 무거운 꽃망울이 둥실둥실 달릴 때 쯤에야 '아, 목련나무였구나.' 하고 알아봤는데. 목련나무와 같이 자란 사람이라 그래서 목련나무를 단박에 알아봤던 거였어요. (왠지 좀 낭만적.)

 

그가 오래 살았던 집 앞에서 오래오래 머무른 뒤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초록색인 여자가 우리를 몇 번이나 흘끔거리는 시선을 받아내면서 그의 이야기를 오래 듣고 우리는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시퍼런 컬러는 집주인의 딸이 제안한 것이라고 하던데 그녀의 옷차림을 보면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니었어요.) 처음 시퍼런 건물을 만났을 땐 1층의 카페에 한번 들어가 볼 셈이었는데, 그의 이야기를 듣고나니 그러고 싶지 않아졌습니다. 그-냥-요.   

 

카페 앞으로 난 작은 횡단보도를 건너 우리는 맞은 편 골목으로 넘어갔어요. 그 횡단보도에서 어릴 적에 작은 사고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장그래처럼 바둑학원을 다니던 그는, 학원이 끝나고 원장님이 직접 모는 승합차에서 내렸는데 바퀴에 발등이 찍혔다고 했어요. 집이 가까워서 친구가 집으로 뛰어가서 어머니를 모셔왔다고 했고요. 횡단보도를 건너 야트막한 오르막을 오르면 그의 초등학교가 나와요. 문방구 세 개가 있었다고 했는데, 이제는 빛바랜 로보트 상자 따위를 잔뜩 쌓아둔 단 하나의 문방구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문방구 중에 '다람쥐 문방구'에 대한 이야기를 그가 들려준 적이 있어요. 주인 아저씨가 애들 주머니 터는 상술이 지극해서, 그 앞을 그냥 지나간 애들이 없었다고 했거든요. 다람쥐 문방구가 있었던 그 자리를 지나며, 그는 '그 아저씨가 못해도 건물 하나는 올렸을 것' 이라고 웃었습니다. 그리고 이효리가 다녔다던 고등학교 앞도 지나고, 지금은 조금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긴 피아노학원 이야기도 듣고요. 그가 다녔던 미술학원도, 영어학원도, 태권도 학원도 지금은 모두 자취를 감췄습니다. 웃으면서 '뭔 사교육을 이렇게 받았냐'고 이야기를 했더니 '다 쓸데없는 투자였다'며 그도 웃었죠. 그리고 저도 곰곰 생각해보니 피아노학원이며 미술학원, 컴퓨터학원, 속셈학원...이런저런 학원들을 참 많이도 다녔었네요.  

 

*

 

그가 걸어온 시간들을 함께 되짚어 걸어가면서, 내 앞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 곰곰 생각했습니다. 오락실을 너무나 좋아하고 많은 학원을 다니던 꼬마가 수많은 가능성들을 디디고 디뎌서 여기까지 온거잖아요. 장차 바둑을 잘 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미술을 잘 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서울대를 갈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중에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면, 그 가능성들은 모두 휘발되어 없어진걸까. 가능성들은 모두 어떠한 특정 기능성으로 대체되어 버린 것일까. 내 앞에 선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다가, 내 안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봅니다. 내 안에 있었던, 있는, 아직 있을수도 있는 수많은 가능성들은 안녕하신지. 나는 여전히 피아노를 치고, 그림을 그리고, 종이를 접고, 풍선을 부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 한 사람이 지닌 가능성에는 유통기한이 있어서 언제까지 마시지 않으면 상해버리는 우유처럼, 인생의 어느시점까지 꽃피지 않으면 내 안에서 시들어 버리는 것인지.

 

가능성이라는 낱말을 사전에서 찾아봅니다.

 

[명사]
 
앞으로 실현될 수 있는 성질이나 정도.

 

어른이 된 지금은 어린날 지녔던 것들과는 조금 다른 성질의 가능성들을 지니고 살게 되었습니다. 나도 모르게요. 내가 앞으로 얼마를 벌 수 있을지, 얼마짜리 집을 살 수 있을지, 남편 연봉은 얼마일지 같은 것들. 기능성으로 대체된 가능성들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언제부터 기능성이 가능성을 대체하게 되었을까요. 언제부터 나는 내 안의, 그리고 내 앞에 선 사람의 가능성이 아닌 기능성에 귀 기울이게 됐을까요. 나이가 몇 살이라고요? 연봉이 얼마라고요? 차가 얼마짜리라고요? 집이 몇 평이라고요?  

 

과거의 가능성들을 자박자박 걷고 돌아보고 추억하면서, 문득 가능성들의 안부를 묻고 싶어졌던 밤입니다. 이미 실현되어버린 과거완료형의 가능성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나 곧 진행될 가능성이라고 믿고 싶어요. 그리고 가능성에 배팅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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