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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이야기와 밥상



아마 3주쯤 되었을게다. 또래 친구들과 퇴근 후에 저녁을 같이 먹은 적이 있다. 가게 안을 느릿느릿 돌아다니는 커다란 개가 틈만 나면 탁자 밑으로 기어들어와 우리가 신고 있던 신발을 슬그머니 물어가곤 했고, 우리는 개의 주둥이에 꼭 물린 신발을 빼내느라 낑낑거리며 낄낄거리며 천천한 시간을 보냈던 저녁. 별 다른 이야기가 오가진 않았지만 많이 웃었고 우리들은 즐거웠다. 그 다음날에도 우리 중의 누군가가 '아 어제 저녁 너무 재미있었어.' 하고 말을 꺼냈으니까. 


그 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함께 하루를 마무리한다는 것의 소중함과 유쾌함에 대해 잠깐 생각했다. 연보라색에서 짙은 보라색으로, 이윽고 깊어지는 밤의 빛깔을 알아차리며 따뜻한 식탁에서 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하고. 그래서 얼마나 오래도록 우리의 마음에 남는가하고. 



지난 연휴. 새벽기차를 타고 전라도 나주로 내려갔다. 고요하게, 초록과 어우러져 마냥 쉬고 싶었던 나는 이런저런 사진을 찾아보다가 아담하고 사랑스러운 한옥을 발견했다. 몇 번이나 고사하는 할머니에게 조르고 졸라 그 곳에서 친구와 두 밤을 잤다. 두 밤을 자고 떠나는 삼일 째 아침, 할머니가 직접 덖은 발효차와 함께 계란 후라이를 하나씩 내어주셨다. 빈 속에 차를 마시고 속 버리지 말라는 할머니의 말 없는 배려. 


할머니는 며느리가 만들어준 가족 앨범을 우리의 발치에 툭 던져주셨다. 훤칠한 아들 딸, 귀여움이 얼굴에 가득한 예쁘장한 손주들 사진을 보다가 할아버지 이야기를 꺼냈고, (짐작은 했지만) 할아버지는 오래 전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혼자 오래 지내는 할머니에게 주변에서는 '혼자 지내니 얼마나 좋아' 하고 농을 많이 던졌단다. 그건 마치, 서울에서 혼자 오래 지내는 내게 주변에서 '혼자 사니 얼마나 편하고 좋아.' 하고 건네는 말 같은 걸까, 하고 잠깐을 해봤다. 고개를 절레절레. 나는 정말로 혼자 사니 편하고 좋아 이리 지내는 것이지만, 할머니가 감내했을 무게는 나는 가히 짐작도 못할 것이므로. 


혼자 오래 삶을 꾸려온 할머니는, 집에는 밥상과 대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이야 얼마든지 밖에 나가면 만날 수 있고, 세상 천지에 널린 것이 음식점이지만 집을 지키고 있어야 할 것이야말로 밥상과 대화라고 했다. 집에 밥상과 대화가 있다는 것은, 이를 함께 나눌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밥상과 대화의 부재를 오래도록 감내한 할머니는, 우리에게 밥상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남자를 찾아 얼른 시집가라고, 늦었다는 말도 아끼지 않았다. 


집 안에 밥상과 대화가 있어야 한다는 할머니의 말이 나는 왠지 마음에 오래 남았다. 밥도 아니고 밥상이어서 좋았다. 매일의 밥상과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내가 친구들과 함께 시시하고 소중한 저녁을 보낸 뒤 집으로 걸어오며 느꼈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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