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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트렌디

초저녁에 잠을 좀 자둔 나는, 눈 위에 비가 푹푹 내리는 새벽 1시 16분에, 설 연휴의 첫 시작날에, 잠을 아껴가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다.

오늘 낮에 누군가로부터
/ 참 트렌디하지 못하네.
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전혀 그 말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실은 좀 좋았다. 나는 나에 관한 여러가지 사실들 중에 그것 하나만큼은 완벽하게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트렌디하지 못하다, 라고.

유행한다는 옷을 입어본 적이 없다. 항시 배가 뽕냥해서 배를 훤히 내놓는 크롭티는 엄두도 못 내봤고, 지금 한창 유행하는 밑단을 쑹덩 잘라먹고 허연 발목을 쑥 내놓는 바지는 도무지 어디가 예쁜지를 몰라서 못 입겠다. 또래 여자들이라면 으레 하는 네일아트는 할 필요성을 못 느껴서 한번도 해보지 않았고, 몸에 무얼 걸치는걸 영 어색해해서 악세사리도 대부분 하지 않는다.

유행의 척도를 가늠할 수 있는 티비가 없기 때문일까. 한국은 깨비깨비도깨비 열풍인데, 한 회도 보지 못했다. 다만 거리에 목폴라와 모직 코트를 장착한 남정네들을 보며 드라마의 인기를 짐작할 뿐이다. 예매 1, 2 위를 다툰다는 한국 영화는 집중을 못하겠다. '볼만하다'는 후한 평가에 보지 않았으면서도 짐짓 귀를 의심한다. 왜 대체 한국 영화는 권력과 폭력, 그도 아니면 웃기지도 않는 싸구려 코미디 뿐일까. 한국 사회는 오로지 한 점만을 향해 달려갈 뿐이다. 미친 개처럼.

유행한다는 건 무엇일까. 유행한다는 것은 같은 시공간을 사는 사람들 중 많은 이가 좋아하는 것이다. 많은 이가 좋아할 법해서 유행하기도 하지만, 단지 많은 이가 좋아하기 때문에 유행이 들불처럼 번지기도 한다. 많은 이가 좋아하기 때문에 무턱대고 좋아하는 것은 왠지 좀 시시하다. 많은 이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무턱대고 좋아하지 않는 것도 좀 시시하지만.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주 어릴 때부터 너무 잘 알았다. 그건 본능에 가까운 동물적인 감각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많은 이가 좋아한다고 해서 그런 것을 기웃거릴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고 본다. 유행하는 것들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를 생각하고 그 중 나의 취향에도 맞는 것을 선택하면 좋을 것이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은 금세 일어났다 식는다. 마음이란 본디 그렇지 않던가. 모두가 좋아하는 듯 싶다가도 돌아보면 어느새 차갑게 식어있다. 유행이란 그런 것이다. 나처럼 성정이 좀 게으른 사람은, 요즘들어 가뜩이나 더 천천히 걷는 사람은 빠르게 바뀌는 유행을 따라가는 것이 벅차고 힘든 여정이 될 것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천천한 클래식을 좋아할 것이다. 고전을 읽고 클래식을 듣고 천천히 먹고 천천히 걸을 것이다. 애당초 나는 트렌디 하기는 좀 글렀다. 나는 유행의 시대 속에 유행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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