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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예쁘게 먹고 싶어서


자취생 짬이 어느정도 되다보니 이젠 뭐든 함부로 안사게 된다. 이사할 때 짐이 되는걸 알기 때문이다. (이래놓고 별 필요없는 것들은 여전히 꾸준히 열렬히 사모은다.) 꼭 필요하지만 사기에 선뜻 망설여지는 것들은, 내 기준으로는 책과 접시. 지난 이사 때 책짐 때문에 한바탕 곤욕을 치른 뒤로는 책을 사려다가도 몇번 멈칫한다. 대부분의 경우 결국 사지만. 그래놓고 또 처박아 두지만.

접시의 경우도 그렇다. 예쁜 접시를 좋아해서 눈에 띠면 부지런히 사모으곤 했는데, 자취를 시작한 이후로는 공간도 공간이려니와 설거지가 귀찮아 늘 똑같은, 몇 안되는, 그나마도 친구가 준게 대부분인 접시를 썼다. 그리고 집에서 밥해먹을 일도 잘 없으니까.

집에서 이제 좀 잘 챙겨먹고 구색을 갖춰 예쁘게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 그릇 생각이 제일 앞선다. 그래, 예쁜 그릇이 필요해! 이건 마치 시 험 앞두고 학용품 사재끼는 형국이긴한데, 나도 이제 생활의 면면을 좀 아름답게 가꾸고 싶다. 매일 밤 11시까지 일하고 주말 이틀내내 출근하는, 너무 너무 바쁜 삶을 살아보기도 했지만 바쁜 템포에 내 삶의 아름다움을 다 휘발해버리는 그런건 이제 싫다.

어제 자정께부터 시작해 하루종일 그릇을 보는데 맘에 드는 그릇이 하나도 없었다. 미키마우스 그릇이 예뻐서 키티와 미키마우스를 잔뜩 결재했는데 결국 제 값어치를 못하는 것 같아 취소했다. 그리고 힘들고 귀찮지만 다시 부지런히 헤멘끝에 와, 비로소 마음에 드는 사이트를 발견. 역시 내 눈은 높았어. (아휴) 가격은 좀 있지만 하나하나가 아름다워서, 오랫동안 예쁘게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고르고 고르고 또 고르라'는 서민 아저씨의 말이 맞았다. (자신이 허용할 수 없는)적당한 선에서 타협해버리면 끝끝내 후회하게 되있다. 몇몇 친구들이 그런 식으로 사랑을 선택했지만, 그들은 대부분 불행해했다.

접시 하나를 고르는데도 이렇게 까탈스러운 나인데 사람을 고르는 일은 오죽할까. 그러나 나는 나를 알고있다. 나는 보는 눈이 좋은 사람이란걸. 나에게 좋고 아름답고 알맞은 것은 대번에 눈을 반짝이며 한눈에 알아봤다.

나에게 알맞게 아름다운 사람.

삶의 작은 면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쉬이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면 참 좋겠다. 기타소리를 좋아하고, 예쁜 꽃을 가꿀 줄 알고, 맛있는 음식을 감사한 마음으로 대할줄 아는 사람. 마음 속에 또렷한 꿈이 있고 매일에 대한 충만한 기쁨이 있는 사람. 버팀목이 되어줄 줄도 알고, 기댈줄도 아는 사람. 자신의 빛과 그림자를 두루 품을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면 참 좋겠다.


얼른 왔으면.
접시도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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