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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on de alone/어떤 낱말들의 모임

김중혁의 <가짜 팔로 하는 포옹> _ 위로, 라는 그 공허함이 절실할 때

 

△ 하상 바오로 신부님이 찍으신 사진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이상하여라.

덤불과 돌은 저마다 외롭고 나무들도 서로가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다 혼자다.

내 인생이 아직 밝던 때는 세상은 친구로 가득했다.
하지만 지금 안개 내리니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인간을 어쩌지도 못하게 슬그머니 떼어 놓는 어둠을 전혀 모르는 사람은 
모든 면에서 진정 현명하다고 할 수 없다.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이상하여라.

산다는 것은 외롭다.
사람은 서로를 알지 못한다.
모두가 다 혼자다.

 

 

헤르만 헤세, <안개 속에서>

 

 

 

*

 

 

가까운 한동안 할 일이 없어서 책을 읽었다. '할 일이 없어서 책을 읽었다' 라니, 얼마나 무료하고 얼마나 멋진 말인가. 두어달 전에 사두고 바빠 몇 장 겨우 들추었던 김중혁 작가의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을 다 읽었다. 나는 원래 소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른다. 모르는데도 광팬이니까 읽었다. 읽을수록 무슨 말을 하는지 어렴풋 알겠다가 며칠 지나서 갑자기 아, 싶었다. 그 며칠이 지금이다.

 

 

가짜 팔로 하는 포옹.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은 그러니까 진짜일까 가짜일까. 가짜 팔로 누군가를 껴안고 다독이지만, 진짜 온기는 다 어디로 간걸까. 몇 편의 단편 속에서 누군가는 누군가를 끊임없이 위로한다. 위로하는 척을 한다. 위로하는 척이라도 해달라고 매달린다. '좀 안아줘.'

사람은 모두 다 혼자다. 산다는 것은 외롭다. 그러니까,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매달린다. 가짜 팔로라도 좀 안아줘. 가짜 팔로 누군가를 위로한다. 가닿을 수 없는 당신의 외로움에 가닿으려 애를 써본다. 가짜 팔로. 우리는 서로를 알지 못한다. 모두가 다 혼자다. 우리는 서로에게 영원한 가짜다. 영원히 가짜라서 어설프게 진짜를 흉내내보려 애쓴다. 사람은 평생을 그렇게 한다. 서로에게 가닿을 수 없는 가짜라 당신을 진짜로 안아주지 못한다. 그러니까,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안아보려 애쓴다.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은 그러면 진짜일까 가짜일까. 

 

 

서로가 서로에게 영원한 가짜라서, 

그것이 사람이므로, 

그래서 평생을 진짜가 되기 위해 노력할 수 밖에 없는 숙명이, 

그것이 사람이므로,

 

 

나는 그래서  

사람이다.

가짜 팔로 포옹을 하면서

진짜로 당신을 안아주고 싶은.

안아달라고 칭얼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