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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들/우리동네 : 낙원이 되는 서교동교연남연희

왕창왕창 왕창상회 : 말그대로 왕창, 창문이 왕 크니까!

 왕창상회. 이렇게 센스있는 이름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탁월한 네이밍이지만, 내가 왕창상회에 들어가지 않은 이유는 아래와 같다.

 

햇볕 화창한 여름의 어느 날. (몇 달전이다.) 일이 있어 우연히 들른 동네에 '왕창상회' 라는, 창이 큰 옛날집을 개조한 까페가 보였고 가게가 정말 이쁘고 소담해서 들어가보고 싶어 그 앞을 기웃기웃하던 찰나. 가게 문이 드르르륵 열리며 까페의 주인으로 보이는, 정말 커피 못타게 생기고 손맛도 감각도 없을 것 같은 아저씨가 -미혼이시라면 죄송합니다. 기혼이라 해도 죄송합니다. 그 탁월한 손맛과 감각을 폄하해서요. 굽신- 나와서 담배를 피웠던가,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가게 앞에 걸터앉았던가.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전형적인 아저씨의 전형적인 아저씨 행동에 실망해서 발걸음을 돌렸더랬다. '저런 사람이 만드는 커피, 뻔하지뭐.'

 

그러다가 우연히 왕창상회를 검색해보았는데, 이거 왠걸. 여기 꽤 잘만드는데다가 특히 양과자가 유명하덴다. 내가 본 그 아저씨가 만드는 거 맞나!!?? 몇 달전 그날만큼 날씨좋은 오늘. 용기를 내어 다시 왕창상회 앞에 섰다. 그리고 오늘은 드르르륵 열고 들어간다.

 

음료는 대부분이 커피 종류이고, non coffee는 화이트 자몽뿐. 커피 아닌 단 하나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자몽음료라니. 뭔가 나랑 잘 통하는 느낌이다. (사소한 거에 혼자 삘링 느끼고 있다.) 게다가 화이트 자몽은 따뜻한 건데 괜찮냐고 아저씨가 물어본다. 정!말! 완전 좋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콜라도 따뜻하게 해서 먹고 싶거든요.

 

내 앞에 한 커플이 주문 중이었는데, 정확한 금액은 기억이 안나지만 양과자를 3만원 이상 사갔다. 아 그래. 여기 양과자가 유명하댔지? 진열장을 보니 색이 고운 - 음, 부끄러운 분홍색이라 해두자. - 마카롱 몇 종류와 양과자가 얌전히 놓여있다. 마카롱을 썩 좋아하진 않는데, 마카롱만 보면 먹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에 - 도대체 어떤 마음인건데?- 부끄러운 분홍색의 소금카라멜마카롱도 하나 주문. 친구는 더치커피.

 

화이트 자몽은 자몽티에 부드러운 우유거품을 올린건데, 썩 괜찮았다! 그리고 마카롱은 정말 맛있었다. 한 입 베어무었을 때 느낌이 '읍!' 하고, 이샘 컵케이크 처음 먹었을 때 느낌이랑 비슷할 정도로 맛있었다. 이 부끄러운 분홍 물질 같으니. 너무 맛있어서 한 입 베어문다음 무심하고 무감해보이는 아저씨를 향해 "이거 직접 만드신거예요?" 라고 외치니, 짧은 "네"가 돌아왔다. 아 정말 너란 주인 남자 아저씨.

 

왕창상회 좋구나. 가게가 좁고 오래오래 머물만한 분위기는 사실 아니라 - 좁은 공간에 앉아 무심한 아저씨랑 기 싸움 하는 느낌이다. 왠지- 아쉽지만, 정말 맛있고 먹을만한 것들이 많다. 나올 때 결국 마카롱을 두개 더 포장해왔다. 되게 무심한 표정으로 또 마카롱을 정성껏 작은 비닐에 넣느라 끙끙하는 아저씨. 츤데레 같으니. 다음에 가면 길쭉한 과자도 먹어봐야지. 냠냠. 여기 마카롱, 다른 맛도 먹어볼테야. 똑똑 관을 타고 떨어지는 더치커피가 멋스러운 곳.

 

 

 

 

 

 

 

 

 "소금 카라멜 마카롱, 제가 한번 먹어보겠습니다. 앙!"